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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Nov 13. 2022

04. 처음 살아보는 나이인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세상에 없다

최근 만난 선배와 식사 대화 중,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여기저기 아프고 먹는 약의 숫자와 그 양도 확연히 늘었다고 한다.

나 역시도 그러하다.

이런저런 푸념을 넘어, 선배가 나에게 그래도 “아직은 한발 남았다”라고 하지만, 

왠지 그 말은 억지에 가까운 자기 방어적 회피에 가까운 푸념처럼 들린다.

 

그래서 “처음 살아보는 나이인데!”라고 위로 어린 말을 전하지만 무언가 억지스럽다.

그래서 선배에게 그 시기의 나이가 되면 어떤 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나도 처음 살아보는 나이인데, 잘 모르겠네!

사실 공상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때때로 <늙지 않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봤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 얼마나 좋을까?”에 대해서 반은 맞고, 아마 반은 틀릴 것이다.

젊어져서 하고 싶은 것들이 남아 있다면 늙는다는 것이 불행이겠지만, 

이미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욕이나 그 열정의 정기를 잃었다면 다를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기 란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실제로 느끼지만 해마다 나이만큼 신체적 기능 저하가 주는 스트레스가 상당히 크다.

신체적 변화는 기능의 변화로, 그 저하는 일상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듯이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중년이 되고 또 노인이 된다. 

그리곤 죽을 수밖에 없는 건 세상의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늙는 것, 노화의 진행은 한 연구기관에 따르면, 생리적 변화는 일생에 거쳐 서서히 일정한 속도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시작되고 중단되고 또 시작된다고 한다.

평생에 걸쳐 크게 3번이 일어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신체의 노화는 26살부터 시작되지만 근육과 뼈는 30세 최고의 정점으로, 그 후부터는 

노화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 급격한 변화는 청년기인 34살, 중년 후반기인 60살, 그리고 고령 기인 78살이라고 한다.

아마 수긍하는 많은 분들도 계시리라. 

나 역시 정확 하진 않지만 그 시기에 대해선 상당히 공감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노화로 인한 신체변화는 당연히 받아들이지만 다만 급격한 노화 시기인 3번의 

나이대에 노화를 거꾸로 돌릴 수 있는 노력은 필요하리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미국 소설가 ‘코 먹 매카시(Cormac McCarthy)’의 소설 제목이다. 

“세상이 급격히 바뀌고 변화하기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게 변했거나 돌아가기 때문에 노인이 살아갈 

만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한다. 

그래서 어느 나라이건 사회이건 노인은 더 이상 그 사회의 중심은 아니다. 

젊음의 아름다움만이 찬양될 뿐이지 나이 듦의 지혜는 이미 낡고 철 지난 것으로 우리는

'노회'라는 부정적 의미로 치부되기도 한다. 

실제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현실사회나 정치판은 물론이고 기업의 조직의 어디에서 든 흔히 볼 수 있는 현상들이다.


이제는 은퇴한 어느 유명교수는 “은퇴를 생각할 나이에 다시, <시작(start)>버튼을 눌렀고, 

예전과 같은 용기를 내려고 리셋(reset) 버튼도 다시 눌렀다”.라고 하였다. 

반백의 나이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용기를 내어도 보고, 심지어 한국이 아닌 외국생활도 마지않는다고 

한다.

중년이 넘어 이제 4계절 중 가을 초입을 넘어가는 시기에 그런 결정은 쉽지는 않았겠지만 

사실 이제는 생소한 이야기도 아니다. 

“인생의 중반기를 넘어 후반기에 접어들지만 스스로 성장기라고 생각하고, 자기 관리만 충분하다면 

이제는 꾸준함을 밑천으로 마음이 기울고 시선이 가는 쪽으로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과 자세가 필요하다”

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직은 “아직은 한발 남았습니다” 와 같은 이야기는 사실 억지에 가깝게 들린다.


누군가처럼 스스로 아직은 젊다고 외치는 <90세가 넘는 삶은 나에게는 여전히 no thanks>이다.

억지로 사는 삶인 듯해서 싫다.

검버섯 핀 얼굴, 늘어진 피부, 뿌연 시야, 불명확한 발음이 주는 늙어가는 그 모습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인정하기는 아직은 싫다!

아무리 풍요로운 삶이라고 해도 지금 이 정도 나이가 충분하다. 

다만 불편하다는 게 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 불편함은 쉽게 찾아오는 피곤함과 신체적인 지속력의 감소가 주는 도전에 대한 

‘삶에 대한 자신감의 상실’이다. 

그것만이 아닌 예전처럼 무엇인가에 설레거나 떨리는 일이 점차로 없어지고, 

감동이라는 단어도 한참 전에 일이다

그 무엇보다도 삶에서 감동받는 일도 드물다는 것 역시 슬픈 일이죠.

그래도 이제 나에게 할 일은 붉은 가을의 계절에 산다는 것에 때로는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와 

함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치는 일이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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