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교육학의 관점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교육학에서 시간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변수입니다.
교육을 설계하고, 판매하며, 강의하는 입장에서도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교육의 내용과 제공하는 형식이 달라집니다.
이를테면 누구가를 삼성과 같은 대기업에 합격할 수 있게 돕는 교육을 제공했다면, 그것은 분명 커리어 교육으로서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 합격이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교육의 시간이 6개월이었는지, 1년이었는지, 3년이었는지에 따라 그 교육의 효과성, 나아가 효율성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비단 해당 교육의 효과성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교육의 수혜자 입장에서도 해당 교육을 통해 얼마나 빠르게 내가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느냐가 이 교육을 들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하지만 요즘 시간이 몇 년 전보다 더 중요한 변수가 된 것 같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연봉이 이 정도면, 차는 이 정도를 타야지’와 같이 ‘이 연령대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라는 ‘연령대별 표준’을 제시하는 SNS 콘텐츠의 득세가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연령대별 표준을 벗어난 이들은, 이전보다 더 강력하게 ‘불안’이란 조급함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더 빠르게 연령대별 표준에 복귀하기 위한 무언가를 찾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시간은, 교육학의 시간은 냉정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교육적 경험을 선택하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빠르기만큼 연령대별 표준에 복귀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이 불안이란 조급함은 우울이란 중력이 되어 찾아옵니다.
교육학 연구자의 관점에서 교육학의 시간은 불행히도 양극화된 상대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사실 괜히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교육학적으로 교육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위권의 학습자들은 이 시간을 ‘선행’적으로 사용합니다. 그래서 (물론 그게 교육학적인 목적이 아닐 수 있어도) 그들이 목표로 한 목적에 달성하게 됩니다. 그것이 영유, 국제초/영재학교, 과고/외고, 좋은 학벌, 대기업으로 표상되는 연령대별 표준에 들어간 삶입니다.
하지만 연령대별 표준을 벗어난 80% 이상의 중위권/하위권 학습자들은 이 시간들을 불안에 좀먹은 채 흘려보냅니다. 흘려보낸다의 의미는 불안하기 때문에 상위권의 그것을 모방하지만, 정작 그것의 의미를 모른 채 교육적 성장이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상위권과 중위권/하위권 모두 같은 연령대별 표준이 되기 위한 목적으로 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교육학적으로 다른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를 ‘있는 자는 더 받고, 없는 자는 그마저 빼앗긴다’는 마테효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테면 똑같이 좋은 학벌을 갖기 위해 1타 강사의 강의를 듣지만, 상위권과 중하위권이 이를 받아들이는 효과가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학은 어떤 이이기를 할까요?
마테효과와 연결하여 설명하자면, 초기의 차이가 이후의 큰 차이를 만들게 되기 때문에 유아/초등기의 읽기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영어유치원, 과고/외고, 좋은 학벌은 차치하더라도 기본이 되는 문해력은 길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해력이 초기의 차이이고, 이 차이가 이후의 큰 차이를 만든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교육학의 시간은 결국 ‘초기의 차이’를 줄이는 곳으로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후의 차이’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러한 의견에 큰 틀에서 동의하는 편입니다. 지역아동센터나 자립준비 청소년들을 만나며 문해력이 부족한 경우에 어떤 어려움을 만들게 되는지를 많이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미 문해력의 이슈가 발생한 후 시간이 지나 이미 연령대별 표준만이 아니라 기초적인 문해력이 부족하고, 수포자가 된 학습자들도 있을 텐데, 교육학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여러 줄 세우기’로 대표되는 ‘꼭 공부가 아니어도 다른 길을 제공’하는 방향이 큰 방향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체능이 있고, 직업계 고등학교 및 전문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마저도 ‘연령대별 표준’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계급적으로 열위에 있다’라는 시선을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본질적으로 ‘연령대별 표준’이라는 피라미드에 입각한 시선만 사라지면 이러한 문제는 해결될 수 있을까요? 이는 '노동자를 길러내는 교육학'의 관점에서 다음 시간에 서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