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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준민 Dec 27. 2022

푸코의 파레시아(Parrhesia)와 자기 배려2

자기 자신을 배려해야 하는 이유

1. 자기 배려, 즉 자기 수양은 철학적 개념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실천이다.      


2. 고대 그리스인들이 자기를 이해하는 방식

고대인들이 이처럼 자기를 배려하고 자신의 삶에 양식과 스타일을 부여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권위와 규율에 속박되지 않고 시선을 자기 자신으로 전향하여 자기에게 몰두할 수 있게 한 원천은 무엇일까? 어떻게 이것이 법규나 구속력 없이 보편적인 삶의 원리로 광범위하게 수용될 수 있었을까? 이 모든 질문은 사실, 그들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를 묻는 것과 동일하다.

그들은 ‘자기’를 자기 자신이 만들어가는 예술적 작품이라고 보았다. 그들에게 자기는 자기 자신의 창조물이고 자기 자신은 자기의 창조주였기 때문에, 자기와 자기 삶은 가장 공들여 돌보고 배려해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따라서 자기 배려는 자기 인식보다 선행되는 삶의 과제였고, 진리나 지식을 아는 것만으로는 완수할 수 없는 실천이다.

 

3. 자신의 생을 재료로 삼아 빚는 작품이라는 의미에서 ‘실존미학’

실존미학으로서의 자기 배려는 인간이 자신의 행위의 규칙들을 설정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변형하고자 하는 의도적이고 자발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그들을 존재 내부에서 변화하게 만들고, 그들의 삶을 미학적 가치가 담긴 작품으로 만들기 위한 의도적이고 자발적인 행동인 것이다.  이는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자유에 형식을 부여하는 삶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4. "너 자신을 알라"는 사실 앎의 문제가 아닌 삶의 문제

자기 배려의 관점에서 소라라테스의 대화편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와는 다른 맥락이 된다. 전통적 해석이 ‘너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라’는 것이었다면, 이제 자기 배려의 윤리학은 앎이 아니라 삶을 중심에 놓는다. 이는 ‘네 삶을 돌보기 위해 그렇게 살고 있는지 아닌지 너 자신을 검토하라’로 재구성된다.      


5. 자기 배려가 실존주의자인 푸코, 사르트르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개별자로서 인간 존재에 주목할 때, 자기 배려를 실천하는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자신의 삶을 빚어가는 예술가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본질보다 우선하는 실존'을 주장하는 실존주의자들의 철학을 그대로 대변하는 삶의 자세라고 볼 수 있다.


6. 과연 현실의 인간은 '실존미학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개인적으로 실존미학이 인간과 사회를 현상적으로 잘 설명해 낸다고 믿지 않는다. 인간은 구조에서 그렇게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조의 영향에 의해 마치 '결정'된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이 어렵고, 한국에서 최고의 축구선수가 나기 어려운 것처럼.

7. 교육적으로 유의미한 자기 배려의 실존미학

하지만 그러한 진실과 별개로 학습자들이 실존미학을 믿게 되는 것은, 교육자 입장에서 교육을 통해 유의미한 학습을 만들어 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학습자들이 자기 자신의 변화 가능성을 믿고, 자기를 배려하고자 하는 것만큼 큰 동기요인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존미학은 사회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 나 같은 교육자에게는 추구해야 할 교육적 방향성이 될 것이다.


8. 학습자가 자기 배려의 실존미학을 믿게 만들기 위해서 교육자는?

교육자로서 학습자들이 실존미학을 믿게 만들기 위해서는 앎과 행의 일치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교육자가 행하지 않은 것을 발화했을 때, 교육자의 권위는 실추되고 학습자는 교육자의 말을 무덤으로 보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전의 내가 주변 여러 훌륭한 교육자들의 어깨너머로 익힌 내용을 교육하는 것은 나 스스로 교육자로서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이며, 앎과 행의 일치를 포기하는 일이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앎을 행한 지 5년이 흘렀고, 이제는 그를 좀 더 정교하게 가공해서 '파레시아'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아직도 앎 중 행하지 못한 것들이 있기에, 그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할 것이다. 어쨌든 수많은 주변 사람들, 파레시아스트들의 도움을 통해 더 많은 행함을 할 수 있게 되어 나도 파레시아스트가 되기를 바란다.  


#푸코 #자기배려 #실존미학 #파레시아 #교육적방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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