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장비의 시작(1)
전날 안전기둥을 붙잡고 숨을 훔치던 사람이, 다음날엔 “뭘 해야 계속 나가게 될까”를 생각하고 있었다. 결심은 원래 잘 도망간다. 도망치기 전에 묶어두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한 선택은, 의외로 단순했다.
장비부터 샀다.
사람들이 보면 웃을지 모른다.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닌데 시계부터 사냐고.
근데 내 목적은 멋이 아니었다. 달리기를 잘하고 싶다기보다, 다시 무너질 때 빠져나올 구멍을 막고 싶었다.
당근마켓에 “러닝 워치”를 검색했다.
가격이 몇 개 보였고, 사진이 몇 장 보였고, 그중 가장 저렴한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판매자는 20만원에 올려놨다.
나는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19만원 가능할까요?”
잠깐의 공백이 있었다.
그 공백이 늘 그렇듯 사람을 긴장시켰다. ‘거절이면 어쩌지’ 같은 건 사실 핑계다. 거절이 두려운 게 아니라, 거절이 나면 내가 다시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봐 두려운 거다. 나는 그 상태로 돌아가기 싫었다.
답장이 왔다.
“네, 19만원에 드릴게요.”
딱 1만원.
크게 깎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확실해졌다.
이건 할인이라기보다, 내 쪽에서 만든 작은 의식 같았다. “그래, 너는 진짜로 이걸 할 거야” 같은.
거래 장소에 나가서 판매자를 만났다.
상대는 시계를 꺼내면서 말하더라.
“저도 한 번 착용해봤는데요… 너무 작아서요. 그래서 바로 팔아요.”
사람이 물건을 팔 때 저런 이유를 말하면, 묘하게 안심이 된다. 고장이나 하자가 아니라, 그냥 나랑 맞지 않았다는 이야기니까. 그리고 그 말이 그때의 나에게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나랑 맞지 않았어요.”
나는 속으로 그 문장을 몇 번 되뇌었다.
그 문장은 그때 내 삶에도 필요했으니까. 과외도, 학원도, 관계도, 책임도… “맞지 않다”는 말을 못 해서 더 끌려다니던 시기였다.
시계를 손목에 채워봤다.
고무 스트랩이 피부에 닿는 압박감이 묘하게 안정적이었다. 기록이 남는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내 삶에 하나 더 생긴 느낌이었다.
“이제 진짜로 시작하는 거겠지?”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을 했다.
확신보다는, 도망칠 수 없다는 감각이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