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빠져버렸다

러닝을 시작한 이유(마지막)

by 박희진

처음 러닝은 정말로 생존이었다. 잠이 끊기고 불안이 치고 올라오면, 나는 밖으로 나가야 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안 나가면 내가 무너질 것 같아서. 러닝이 “좋다”는 말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만큼 필요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변했다.


불안해서 나가는 날도 있었지만, 뛰고 싶어서 나가는 날이 생겼다. 몸이 먼저 묻는 날이 있었다. “오늘은 한 바퀴 돌까?” 기분이 이상했다. 살아남기 위해 했던 일이, 어느새 내가 기다리는 시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기록을 켜는 것도 싫었다. 숫자는 또 나를 평가할 것 같아서. 느리면 괜히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서. 그래서 대충 뛰고 대충 들어오던 날이 많았다. 그런데 달리는 횟수가 늘어나니까 숫자의 의미가 달라졌다. 평가가 아니라 관찰에 가까워졌다.


어제보다 30초 빨라진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어제보다 덜 무너진 게 중요한 날들이었다. 어제는 안전기둥을 붙잡았는데 오늘은 그냥 지나쳤다든가, 어제는 숨이 끊겼는데 오늘은 숨이 한 번 길게 내려갔다든가. 그런 작은 변화가 쌓이면서, 삶도 조금씩 같이 변했다.


학생이 무리한 부탁을 할 때, 자동으로 “네”가 튀어나오기 전에 한 번 멈추게 됐다. 아버지 병원 일로 마음이 무너질 때도 “지금 내가 흔들리는 중이구나”를 알아차리는 날이 생겼다. 돈 얘기와 육아 얘기와 개원 준비가 동시에 몰려올 때, 적어도 숨을 한 번 길게 쉬고 말하는 날이 늘었다.


러닝이 내 문제를 해결해 준 건 아니다. 다만 문제를 들고 있는 내가 조금 더 버틸 수 있게 해 줬다. 그래서 나는 러닝을 일기처럼 남긴다. 거리보다 먼저 적는 문장이 있다.


오늘은 왜 뛰었나.
오늘은 어디에서 멈췄나.
오늘은 숨이 언제 잘 쉬어졌나.


가끔은 “오늘도 안전기둥을 지나쳤다” 같은 한 줄만 적고 끝낼 때도 있다. 그 한 줄이 은근히 뿌듯하다. 아주 작은 승리처럼 느껴져서.


생존으로 시작했는데, 어느새 빠져버렸다. 러닝이 멋져서가 아니라, 러닝이 나를 살려서. 살려주는 건 결국 좋아하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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