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속도에 붙여진 이름

by Eun

“조금 더 지켜봅시다”

그동안 진료 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도 있고,

아직은 판단하기 이르다는 말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그 말이

“괜찮을 거야”의 또 다른 말처럼 들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희망이 아니라

희망을 미루는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말 하나에 기대어 나는 아이를 키웠다.

언젠가는 다른 아이들과 같아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뇌염으로 인한 입원 한 달 후,

아이의 느림이 그냥 지켜만 봐도 되는 일인지

처음으로 의문을 가졌다.


언어가 유독 느려

언어치료를 받고 있긴 했지만,

과연 언어만 느린 게 맞을까 생각했다.

의사와 상의했고, 또 다른 전문의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많은 것이 느렸음에도

하랑이는 참 밝은 아이였다.

낯가림도 없고, 잘 나서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아이.

그 모든 것이 아이만의 장점처럼 보였다.


그런데 자랄수록

하랑이는 유독 잘 울었다.

상황과 상관없이 뜬금없이 울며

엄마나 아빠를 찾았다.

그럴 때마다 당황한 선생님들은

어김없이 부모를 찾았다.


너의 양육은 잘못되었어—라고 말하는 것만 같은

수시로 울려대는 전화 벨소리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소아정신과를 드디어 찾았다.

아이의 문제인지 나의 문제인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능만 낮은 건 아닌 것 같은데.

ADHD 검사도 해보자.”

검사 결과, ADHD를 동반한 경계선 지능이었다.


“이거 지적장애보다 더 애매해. 장애등급도 안 나와.

그래서 더 힘들어. 요즘은 느린 학습자라고 부르는데,

언어치료 하나로는 부족해.

지금이 황금시기야. 가만히 있으면 놓쳐.

치료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약도 같이 먹자.

일단 정확한 지능은 초3 이후에나 나오니

일단은 치료부터 빨리 시작하자고요.”

소문으로 듣던 ‘팩폭의 대가’ 답게, 의사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말은 빠르고 단정했고,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역시, 그냥 느린 게 아니었어.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던 날,

나는 이상하게도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있었던 것 같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이제는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다는 걸

몸이 먼저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부모가 눈물을 쏟아냈다던

진단일 당일,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또 생소한 이름이 아이에게 붙여졌지만

그저 그제야 제대로 붙여진 이름 같았다.


그리고 의사는

나의 상태도 ‘양육 우울증’에 가깝다고 말했다.

산후우울증도 이미 지나왔을 거라고 했다.

태어나자마자 쏟아졌던 아이의 어려움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내 감정을 돌보지 않고

외면해 온 것 같다고 했다.


사실 그동안

산후우울증이라는 말을

어딘가 속 편한 소리처럼 여겨왔던 것 같다.

“신생아 데리고 병원 투어를 계속해봐라.

정신없어서 우울할 틈도 없다.”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런 우울증이 내게도 왔다고?

일단 알았고, 이번에도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아이에게 붙은

새로운 진단명만으로도 이미 여유가 없었다.

이제는 이 아이를

조금 더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인정해야 했고, 치료를 서둘러야 했다.


의사는

몇 번이나 ‘황금시기’라는 말을 반복했다.

정확한 지능은 초등학교 3학년 이후에나

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이 어느 순간 하나의 기준처럼 들렸다.


그때까지 달리면, 이 아이가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았다.

대신 ‘이 아이는 이 속도로 자란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 현실 안에서

나는 다른 질문을 해야 했다.


얼마나 빨리 따라갈 수 있을지가 아니라,

어떻게 이 아이와 함께 살아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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