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어머니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 당신은 위대합니다.

by 꿈꾸는 덩나미

나에게 어머니라는 단어는 마법사의 주문과 같은 것이다.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뱉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파도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말할 수 없는 그리움, 아픔, 슬픔이 범벅이 되어 내 마음에 밀려들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작년 늦은 가을에 홀홀히 떠나셨다.

언젠가는 올 날이었지만 막상 그날이 오자 이별에 대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지금도 내 속에는 여전히 그 슬픔이 갈무리가 되지 못했다.

부모와의 이별은 누구나 참 극복하기 힘든 슬픔인것 같다.


우리 어머니들의 시대는 너무 가난했다.

무엇인가 배운다는 건 사치였고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다.

한국전쟁의 터널을 간신히 빠져나와 가난한 조국에서 먹고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세대가 어머니들의 세대였다. 어머니들은 보릿고개를 넘어오면서 내 자식들에게만큼은 그 가난을 대물림할 수 없다는 생각에 억척같은 삶을 살아오셨다.


자식을 위해 돈을 벌고 자식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자식을 위해 돈을 썼다.

어머니들의 삶의 목적은 오로지 자식들이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고단하게 가정을 일으켜 세우고 자식들을 양육하였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었던 나의 어머니는 그 몸을 밑천 삼아 노동일을 하셨다.

통영은 굴 양식을 많이 한다.

청정 바다에서 갓 올라온 굴은 거칠기 짝이 없었지만 어머니들의 손끝에서 비로소 뽀얀 자태의 영양굴로 환골탈태를 했다.

그 굴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으로까지 수출이 되었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풍요를 안겨 주었다.


나는 그 과정을 너무나 잘 안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 몇 년간 키운 굴은 기중기로 끌어올려져 각 작업장에 쏟아진다.

그 날카로운 굴 껍데기는 부드러운 여인들의 손을 사정없이 할퀴었고

한 겨울 찬 바람까지 뼛속으로 스며들어 그녀들을 괴롭혔다.

그녀들은 돈 욕심에 새벽잠을 포기하고 경쟁하듯이 그 겨울 바닷가 굴 양식장으로 출근을 했다.

시간은 돈이었고 굴을 많이 까면 깔수록 돈은 쌓이는 것이었으니까.


그녀들은 화장실 가는 시간이 아까워 물을 잘 마시지 않았다.

나이 든 이는 쪼그리고 앉아 굴을 까기도 하고 젊은이는 하루 종일 서서 굴을 까기도 했다.

다리는 퉁퉁 붓고 허리는 끊어질듯하고 손가락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휘어져 간다.


그렇게 번 돈으로 어머니들은 밭도 사고 논도 사고 자식 대학 공부도 시켰다.

자식들은 제가 잘나서 먹고사는 줄 알지만 그 밑바탕에는 어머니들의 희생이 있었다.


통영에는 굴껍데기가 산처럼 쌓인 곳이 많다.

그것은 볼 때마다 어머니들의 눈물과 한숨과 아픔이 느껴진다.

여름날의 통영은 굴 껍데기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렇게 세월을 사신 어머니들은 망가진 몸으로 병원을 출근하다시피 한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바다가 떠 오르고 그 속에서 건져 올려진 굴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는 법칙과 같다.

굴은 어머니들의 땀과 눈물이었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재정을 공급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를 길러 낸 어머니들이 하나 둘 빈 집만 남긴 채 떠나가셨다.

어머니들이 쌓아 놓은 굴 껍데기 산은 여전히 끄덕 없이 버티고 있는데...


자신을 닮은 자식들만 이 땅에 줄줄이 남겨놓고 그녀들은 안개처럼 사라져 갔다.

가엾은 여인네들...


통영바다는 오늘도 변함이 없고 사람들은 그 속에서 또 굴을 까며 살아간다.

나는 그녀들의 결말을 잘 알고 있다.

내 어머니를 통해 이미 보았으니까.

그럼에도 그녀들을 응원하게 되는 건 그녀들이 그 일을 하는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가정을 위해... 나보다 귀한 나의 자식들을 위해.


그래서 그녀들의 삶의 결국이 해피엔딩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워 그립다고 말을 하여도 이제는 내 기억 저편에 자리잡고 계신 내 어머니...

한 순간의 꿈인듯 그 시간이 다 지나가 버리고 이제는 추억 한자락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이렇게 우리의 소풍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다시 만날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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