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시나요?
나는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그다지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어 늘 어떻게 하면 빨리 죽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때의 나는 소아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일찍 두 자녀를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슬픔이 알게 모르게 내 속에 전이되어 소아우울증이 뭔지도
모른 채 마음이 병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저절로 치유가 된 건지 아니면 내 마음의 깊은 심연 속에 가라앉혀 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살아있다. 하지만 지금도 그다지 오래오래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언제든지 미련 없이 떠날 때가 되면 떠나야지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그렇게 삶을 대하는 내 마음의 자세가 늘 죄악처럼 여겨져 신께 죄송했다.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시작과 끝을 정할 수 없고 그것은 오직 신의 영역이건만 나는 나를 그렇게 규정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나는 예순 살 전후로만 살고 싶다고 신에게 기도를 했다.
처음에는 그보다 이른 서른 살이었다. 그런데 왠지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 쉰 살로 늘였다가 예순 살로 정했다. (내 마음대로 정한 내 삶이었다)
어느새 그 나이에 가까이 다가가다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정말 그렇게 되어도 후회하지 않을까?
아니, 더 산다고 해서 내 삶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고.
이기적인지 모르겠다.
나를 둘러싼 가족들과 형제들과 이웃들에게 너무 무책임한 처사는 아닌 걸까 싶은 생각도 든다.
작년에 두 어머니들을 떠나보낸 이후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끝이라면 너무 허망한 일이 아닌가.
불교에서는 윤회사상이 있어 그 죄과에 따라 이것으로 태어나고 저것으로도 태어나고 계속 그런다는데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멸되는 것 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기독교에서는 일평생을 슬픔과 수고뿐이라고 정의하였다.
나는 그것이 나에게만 해당되지 부유한 사람이나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해 아래 모든 사람들이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슬픔과 수고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인생의 모든 분복을 누린 솔로몬왕이 죽음 앞에 남긴말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것이었다. 그의 결론은 인생은 헛되다는 것이다.
부자도, 가난한 이도, 권력자도, 일개 소시민에게도 동등하게 적용이 되어 그들은 천년만년 살지 못하고 쌓아 올린 그 모든 재물을 가지고 갈 수도 없으며 누구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신 앞에 서게 된다면 나는 삶을 사랑하지 않은 벌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지만 좀 더 열심을 내어 살 수도 있지 않았겠냐고 말을 한다면 할 말이 없다.
신이 각자에게 준 본분대로 어떤 이는 남에게 맛난 요리를 해 먹이는 삶을 살았고, 어떤 이는 예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였고, 어떤 이는 크게 사업을 하여 다른 이들이 거기에 기대 살아가게 하였고, 어떤 이는 동네를 깨끗이 청소하여 타인의 마음에 상쾌함을 더해주었고, 어떤 이는 아픈 자를 치료하여 고통을 덜어주었고, 어떤 이는 다른 사람의 아이들을 보육해 주고, 어떤 이는 리어카에 폐지를 주워 팔고...
다들 그렇게 살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나를 위한 삶이 타인을 위한 삶이었고 타인을 위한 삶이 자신을 위한 삶이었음을 보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참 축복인 것 같다.
젊어서는 눈에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움켜잡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게 되고, 서서히 삶에 대한 마무리를 하게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나와 상관이 없다고 여겼던 죽음을 깊이 고민해 보게 되니 말이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하면 많은 이들이 반감을 가질지도 모른다.
인생 백세시대라는데 넌 왜 이렇게 허무주의자니?
낼모레 죽을 사람처럼 별소리를 다한다라고.
그런데 내 주위를 돌아보니 많은 분들이 사라지고 없다.
영원히 우리 곁에 있을 것 같던 부모님도, 친척분들도.. 이제 내 차례가 다가오고 있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준비를 해야 마땅하다.
언제든지 죽음의 사자가 내 곁에서 손을 내밀 때 후회하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고 떠날 준비를 하면서.
그것이 지혜로운 삶의 길인 것 같다.
유독 죽음을 부정적인 의미로 받는 이들을 많이 본다. 피하고 싶은 본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길이고 강건해야 칠팔십 년을 사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인데 그다음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는가.
혹자는 죽어봐야 안다고 한다. 어떤 이는 다들 가는 길인데 무서울게 뭐가 있느냐고 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삶의 결과로 다음 세상을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 완성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남은 자들에게 죽음은 영원히 슬프고 아픈 이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아낌없이 사랑하려고 한다.
그 사랑을 다 주지 못해 후회하지 않도록.
나에게 빈 껍데기만 남아 홀홀히 떠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