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명절 또 없을것이다.
오래된 습관처럼 명절이 되면 고속도로에 오른다.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한 고속도로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해 가며 우리는 수십 년 동안 그렇게 고향을 찾았다.
고향에는 부모님이 계셨고 사랑하는 형제들과 정 많은 이웃들이 있었기에 그곳에 가면 마음이 부요해지고
사람의 도리를 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어쩐지 명절만 되면 고향으로 떠나야 했다.
작년에 우리의 고향이었던 어머님들이 결국 돌아가셨다.
그래서 올해는 이 짓거리를 안 해도 되나 했는데 남편은 산소에라도 가야 한다며 길을 재촉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밤새도록 준비한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명절 행렬에 동참하게 되었다.
산자를 위한 건지 죽은 자를 위한 건지 모를 이 이동을 견디며 '올해까지만 하고 이제는 그만해야지...'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였다.
한 달 내내 감기몸살은 내 곁에서 떨어지지를 않고 죽은 듯 뒷좌석에 몸을 안착시키고 되도록이면 말도 하지 않고 나의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발산하면서 이 길을 떠났더랬다.
남편의 고향인 구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산으로 향했다.
섬진강이 한눈에 내려다 뵈는 곳에 어머니의 차가운 대리석 납골묘가 있었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그곳에 잠시 머물다가 시동생에게 음식을 건네주고 동네 지인들에게도 인사를 드리러 갔다.
한결같이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주시는 인숙이 어머니...
"형님! 오래오래 사세요. 형님네 없으면 이 동네에 와도 찾아갈 집이 한 군데도 없어요."
밤이니 호박이니 바리바리 싸 주시는 보따리를 들고 통영으로 향했다.
차가 밀려 어둑어둑해지는 것을 느끼고 어머니 계신 그곳에 들어섰다.
작년에는 마당으로 들어가며 "엄마!" 했건만 올해는 죽은 자의 땅에서 엄마를 찾았다.
"아이고 온다고 욕 봤데이... 맨날 이리 어두워져야 오노 그래? 들어오거라."
반겨주는 목소리도 그 무엇도 없이 그저 차가운 땅만 쓱 한번 만져보고 다시 산자의 땅으로 돌아 나왔다.
꿈을 꾸는 건 아니겠지?
어찌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곁에 계셨던 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가 있단 말인가?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꼭 그렇게 가깝지만은 아니한 것이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무한한 세계가 가로막혀 있으니 말이다.
죽음을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너무나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동생을 위해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부산으로 향했다.
마음과 육신이 아파서 위로가 필요한 시동생네로 갔다.
시동생은 자신처럼 우울해 보이는 강아지를 껴안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위로 보다는 혼자 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눈치가 다분히 보이는데 눈치 없는 남편은 자신의 집인 듯 편안한 옷차림으로 돌아다닌다.
아침이 되자마자 급히 식사를 마치고 부산의 지인들을 뵈러 갔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부모님 같은 분들이 이제 건강이 나빠져 천국 갈 준비를 하는듯해서 우리도 살아서 드리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러 간 것이었다.
그분들은 진심으로 우리를 반겨 주었고 우리는 그 속에서 감사와 평안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이 간 아이를 위해 축복 기도를 해 주셨고 올라가면서 먹으라고 음식들을 넘치게 담아주셨다.
육신은 비록 연약해져도 영혼은 독수리 날개 치듯 강건해 보여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렇게 또 온길을 다시 돌아가야 했다.
온몸이 방망이로 얻어맞은 북어처럼 너덜너덜해졌지만 마음은 흡족한걸 보니 잘 한일이었다.
오늘은 눈 뜨자마자 교회 청소를 해 놓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니? 부부끼리 왜 이런대요? 감기가 나을 생각을 안 하네... 이번 주는 계속 주사를 맞으러 오세요."
혹독하게 명절을 치른 대가는 감기 몸살이었고 나는 약에 취해 오전 내내 잠을 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