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달란트
달란트는 없는 걸까? 잃어버린 걸까?
내가 보기에 그 아이는 달란트가 하나도 없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고 춤추는 걸 좋아했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일 뿐이었고 타고난 고음불가에 박자는 제멋대로이고 소문난 몸치였다.
그 아이는 흥이 많을 뿐 춤과 노래는 조금의 재능도 없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운동신경도 더럽게 없었다.
달리기는 뛰는 건지 걷는 건지 알 수가 없었고 친구들이랑 하루 종일 자전거 연습을 해도 마지막까지 못 타고 남은 건 그 아이 한 명뿐이었다.
바닷가 근처에 살아서 물이랑도 친할법한데 물에는 아예 뜨지도 못했다. 친구들이 깊은 곳에서 수영을 할 때 그 아이 혼자 얕은 물가에서 손바닥을 바닥에 대고 개헤엄을 하고 있었다. 물속에 데리고 가면 그대로 꼬르륵~하고 가라앉아 버렸다.
그 아이에게서 뭔가 특별한 걸 찾아보고 싶었지만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그러면 얼굴이라도 예쁘야 하지 않은가?
글쎄? 미운 건 아니지만 예쁘다 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억지로 말을 하자면 조금 귀여운 것 같긴 하지만... 진짜 귀여운 아이에 비하면 또 많이 미흡한 것 같고.
그러면 그 모든 걸 커버할 수 있는 부모님이 부자인가? 그것도 아니다. 밥 먹고 살기에도 바쁜 살림이었다.
아!! 그럼 공부는 잘하겠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뛰어나게 잘하지도 않네...
여러분은 이 아이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그럼 마지막 남은 방법... 연애를 잘해서 능력 있는 배우자를 만나는 건 어떨까?
그런데 이 아이가 못하는 것 중에 제일 못하는 게 또 연애라 하네?
그럼 죽어야지 뭐.
어쩜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이 험한 세상에 왔단 말인가...
조물주는 이 아이에게 어떻게 이렇게 불공평할 수가 있단 말인가.
거기다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 별별공포증은 다 가지고 있네. 나 원 참~
이것은 내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것이 객관적인 내 모습임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살아가려면 돈? 미모? 재능? 가운데 무엇인가 한 가지는 있어야 했다.
그런 것 없이 이 나이까지 어찌어찌 살아온 게 용하다.
특별한 달란트가 없었던 나는 보육교사로 30년 가까운 세월을 일했다.
아이들을 특별히 예뻐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다른 교사들은 아이들이 그저 예쁘고 사랑스러워 이일을 한다는데 나는 내 자식들 키우려다 보니 남의 자식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된 것뿐이었다.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일은 생각보다 힘들어 성대결절과 만성피로를 달고 살았다.
(뭐 지금은 보육교사의 처우가 많이 개선되긴 했지만 오래전에는 교사대 아동수가 정해져 있지도 않았고 원장이 교실에 밀어 넣는 모든 아이가 내 몫이었다.)
그 당시의 나의 소원은 너무나 소박해서 일주일만 병원 침대에 누워 쉬는 거였다.
왜 하필 병원 침대냐고? 감기몸살이 나서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는데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천국이었다. 그때부터 병원 침대는 곧 휴식과 회복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나는 학부모와 소통이 너무 잘 되었고 아이들에게도 그럭저럭 괜찮은 교사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모든 행사도 척척 해 냈고 학부모 상담도 하루에 열명 이상할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이젠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간혹 뉴스화면에 나오는 어린이집 교사들을 보면서 흠칫 놀라기도 했지만 뉴스에 나오기 전에 이일을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그렇게 3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 보니 아이들은 자랐고 나는 이렇게 나이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내 삶을 하얗게 불태웠다. 특별한 달란트가 없으니 몸으로 때워야지 뭐 하면서.
조물주께서 그 많은 달란트 중에 그냥 선심 쓰셔서 하나만 줬어도 내 인생이 달라졌을 텐데 하며 하늘을 본다.
그날도 그렇게 원망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어린 시절이 떠 올랐다. 나는 꿈꾸는 걸 좋아하고 끼적거리며 글 쓰는 걸 좋아하고 낙서하는 것도 좋아하고 수첩 꾸미기도 좋아하고 인형옷 그리기도 좋아하고 웅변도 좋아했다. 이 모든 게 나의 재능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물주께서는 이것들을 잘 이끌어 내어 내가 밥벌이를 하길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제는 그분이 아니고 나 자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의외로 달란트가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내가 촌뜨기였다는 것도, 어린 시절 학교 도서관에 처박혀 그 많은 동화를 읽었던 것도, 내 마음에 채워지지 않았던 공허함조차 내 삶의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제 교회에서 한 친구가 그랬다.
자신은 서울뜨기라서 시골의 감성을 잘 모른다고 그래서 내가 쓴 시골의 추억들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진다고... 그렇구나...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한 어떤 것을 다른 사람은 그렇게도 받아들이는구나.
눈에 보이는 것만 달란트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 나의 달란트가 될 수 있음을 늦게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러면 누구나 달란트는 있다.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잘하는 것, 말을 재밌게 하는 것, 성실한 것, 착한 것, 조금 모자란 것도 때로는 감동을 줄 수가 있다.
그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면 또 어떤가?
우리는 의외로 많은 달란트를 소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내 속에 잠들어 있는 달란트를 찾아보자. 그것을 깨워 일하게 하자.
더 세월이 가기 전에 그것을 활용해 보자. 조금 더 행복한 삶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