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 & 나쁜 사람

나는 착한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by 꿈꾸는 덩나미

작은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이 세상 모든 기준을 착하다 나쁘다로 결론지었다.

"저 사람은 착해요. 다른 사람을 도와 주니까요." "저 사람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니 나빠요."

이 아이의 이분법적 사고는 간결하기 짝이없다.

경기도에 올라와서 사기를 당했다.

평생에 이런 일이 없었는데... 물론 사기를 당한 우리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은 한다.

아는 사람이었고 상대방을 믿었고 설마 했기에 그 상처가 컸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곳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우리에게 그런 일이 생기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람은 그저 사랑해야 할 대상이었건만.


그 후유증은 오래갔고 우리 마음을 병들게 했다.

화가 치밀어 오르면 신에게 기도를 했다.

"그 돈은 우리가 오랜 시간 고생한 대가였고 우리는 그 돈이 꼭 필요합니다. 그 사람에게 갚을 수 있는 능력을 주세요." 그랬다가 또 화가 나면 "그들을 심판하소서. 남에게 사기를 친 그 사람들에게 하늘의 불을 내리사 그들과 그들의 자녀, 손주까지 심판하소서"하는 엄청난 기도를 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다지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돈을 받기 전까지는.


사람을 믿지 말자.

사람은 악하다.

언제 나에게 사기를 칠지 모르니 눈을 크게 뜨고 정신 바짝 차리자.


이번에 이사를 하며 공인중개사 한 분을 만났다.

고향이 의성이라는 이분은 진심을 다해 우리가 살던 집을 빼 주었고 우리가 살 집도 구해 주었다.

우리가 중도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선뜻 삼천만 원을 빌려 주겠다고 했다.

우리가 언제 알았다고? 뭘 믿고? 선의로 다가와도 일단 의심부터 하자.

세상은 만만한 곳이 아니야! 겪어 봤잖아!

그분은 우리의 형편을 알고 복비도 30만 원이나 깎아 주었다.

복비를 한 푼이라도 더 챙기려는 사람은 봤어도 깎아주는 분은 또 처음이었다.


나는 두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할 때 <만남의 복>을 달라고 기도를 한다.

우리의 삶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늘 만남의 연속이다.

직장에서 동료와의 만남, 아파트에서 아래위층간의 만남, 길을 가다가 우연한 만남, 좋은 스승과의 만남, 부모와의 만남, 배우자와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 중요하지 않은 만남이 없다.

이 모든 만남 속에 악한 자와의 만남은 걸러 달라고 기도를 한다.

잘못된 만남이 우리 인생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방의 속까지 알아낼 능력이 도무지 없다.


또 그렇게 색안경을 끼고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나 자신도 피곤해진다.

그래서 신의 도움을 바라고 우리 앞에 악한자들을 치워달라고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착한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 나의 모습은 어떻게 비칠까?

적어도 나는 남에게 사기를 치거나 피해를 입힐 사람은 못된다.

그렇게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쁜 사람도 아니다.(동의할 수 없는 사람?)

아니, 착하게 살려고 노력을 하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이다.


내가 선의를 가지고 상대에게 나아갔지만 상대는 그 선의를 악하게 이용하는 경우를 보았던 나로서는

세상이 만만치 않은 곳이 되어 버렸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돈이 거짓말하는 것이다>

<돈은 앉아서 빌려주고 서서 받는다>

서서라도 받을 수 있다면 정말 다행이다.

옛 선진들은 어떻게 이렇게 다 알고 있었을까?


성경에 보면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이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악을 분별하고 악한 자를 걸러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내 속에 순결한 마음을 잃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힘도 있어야 할 것 같다.


세상에는 아직 착한 사람이 훨씬 더 많다고 믿고 싶다.

그 착한 마음이 나쁜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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