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버려야 한다.

버리야 할 때가 있고 끌어안고 살아야 할 때가 있다.

by 꿈꾸는 덩나미

며칠째 이삿짐들과 씨름을 하고 있다.

집을 줄여 이사를 왔더니 짐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거실 바닥에서, 안방바닥에서 뒹굴고 있다.

짐이 이렇게 많으리라고 상상도 못 했다. <거지 짐이 석짐>이라더니 그 말이 딱 맞다.

포장이사를 신청했건만 소통의 오류가 생겨 반포장으로 하게 되니 이놈의 짐이 모두 내 몫이 되어 버렸다. 정리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뭘 해야 될지 모르는 듯 멀뚱 거리며 괜스레 목소리만 크다. 뭔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정리만큼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이사 갈 때마다 따라다니는 물건들은 왜 이리 많은 걸까?

평소에 아끼고 언젠가는 사용할 수 있겠지 싶어 그냥 둔 물건들이 수십 년째 우리와 동행하고 있다. 그다지 생활에서는 크게 쓰이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오늘 장롱 속을 제 집처럼 차지하고 있는 옷들을 잔뜩 버렸다. 옷뿐만이 아니고 생활에서 크게 사용되지 않는 물건들도 다 버렸다. 그러다 보니 꼭 필요한 물건들도 따라 버려지기도 했다. 그래도 짐들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아기 때부터 함께했던 물건들도 제법 많아 이번 기회에 다 버리기로 했다.

나 스스로 알뜰한 사람이라고 치부하면서 버리지 못했던 많은 물건들.

왜 이렇게 끌어안고만 있었을까?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짐을 정리하고 계셨다.

특별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뭘 사 들고 가면 짜증부터 내셨다.

"화장품은 언제 다 쓸 거라꼬 이런 걸 사 오노. 내가 언제 찍어 바르는 걸 좋아하더나?"

어버이날이라 고민고민 하고 사 간 화장품을 어머니는 진심으로 싫은 티를 내셔서 내가 머쓱한 적이 있었다.

혹시라도 넘어지실까 봐 사 보낸 발바닥에 찍찍이 붙은 양말도 두 켤레만 꺼내 쓰시고 다시 나에게 주셨다.

속옷도 서너 개만 사용하고 포장도 뜯지 않은 새것을 그대로 나에게 돌려주셨다.

어머니는 꼭 필요한 거 몇 개만 남겨놓고 다 나에게 가져가라고 하셨다.

떠나실 때 자신의 물건이 남는 게 싫으셨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남은 물건을 누가 가져가지도 않을 것 같아서 살아계실 때 미리 나에게 다 주신건지...

덕분에 유품을 정리하기가 쉬웠다.


부산의 친구가 남편과 사별하고 한동안 서울 강남의 부잣집으로 일을 하러 갔다.

부산에 한 달에 한 번씩 내려오면 그 집주인의 사용하던 가방이며 옷이며 여러 가지를 선물로 받았다고 가져와 보여 주었다.

말로만 듣던 명품들이었다.

가구들도 최소 몇천만 원이라는데 그것도 수시로 바꾼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가져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친구에게 아부를 하기도 했다.

일 년인가 그런 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긴 했지만 그런 부잣집의 이야기는 가난한 우리가 상상조차 못 할 정도로 비싼 물건이 주인의 기분에 따라 자주 바뀌고 버려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값싼 물건도 제대로 버리지 못하고 최소 10년 이상은 사용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물건은 거의가 20년 30년 된 물건이 태반이다.

물건은 낡고 부서지고 색이 바래어지고 기능이 다해야 버리는 것이라고 여기고 살았다.

거기에는 내가 알뜰해서가 아니라 내 생활 형편이 썩 좋지 않다 보니 그런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렇지만 비싼 물건을 수시로 바꾸어 대는 것도 문제가 있다.

내 돈 주고 내가 바꾸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수는 없는 거지만 그래도 가난한 이웃을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마음의 상처를 받고 위화감을 느낀다면 더불어 사는 세상에 옳은 행동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버려야 하고 때로는 끌어안고 살아야 할 때가 있다.

다 버릴 수도 다 끌어안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삶의 지혜가 생길수록 내려놓음의 삶을 살 줄 알게 된다.

마음의 욕심도, 아끼는 물건도, 그리고 내 삶의 일부분까지도.

이사를 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소비도 하지 않으면서 악착같이 끼고 있는 물건들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그런 것들을 집안 구석구석에 끼워놓고는 몸도 마음도 가뿐히 살 수가 없다.


어머니의 지혜가 새삼 마음에 와닿는다.

떠날 것을 알기에 짐도 줄여갈 수 있는 지혜.

그 짐이 누군가의 짐이 되지 않게 내 주위를 항상 정리할 수 있는 것.


며칠째 짐 정리로 인해 나는 몸살을 앓고 있다.

내 체력의 몇 배에 해당하는 일을 하는 것 같다.

식사는 계속 시켜 먹고 몰골은 말이 아니다.

나는 지금 짐의 노예가 되어있다.

버릴 것은 미련 없이 버릴 일이다.

그래야 노예가 아닌 물건의 참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