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동생
이 아이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동생이다.
이 아이는 아기 때 소아마비를 앓아 왼쪽 다리가 불편하다.
어릴 적 내 기억 속에는 부모님이 이 아이를 고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업고 다니다 저녁 무렵에 지친 모습으로 대문을 들어서던 모습이 선명히 떠 오른다.
건강한 사람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 내 동생은 이런 핸디캡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니 그 마음의 서러움이야 오죽하랴...
그래도 겉으로 보기에는 이 아이는 너무 씩씩하다.
너무 씩씩해서 때로는 내가 자기 누나라는 걸 잊어버리기도 하는 것 같다.
나를 동생에게 하듯 야단치거나 꾸짖는 건 예사였고 매형을 핫바지정도로 여기는 것 같아 마음이 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시는 너랑 연락하나 봐라' 하고 이를 갈 때도 있었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더니 다행히 남매 싸움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가기도 했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몇 년간은 이 아이가 얼마나 예민해졌는지 바늘 끝처럼 뾰족했다.
그 바늘 끝으로 상대방을 찔러댈 때에는 있는 정 없는 정 다 떨어지다가도
생사의 기로에 선 어머니의 보호자로 볼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고 백번을 이해하기도 하였다.
그러함에도 이 아이의 무례한 행동과 언사는 나를 힘들게 했다.
오늘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특유의 투박한 목소리로 "누나! 강냉이 조금 땄는데 보내줄까?" 한다.
어머니 살아 계셨을 적엔 옥수수, 양파, 마늘, 깨소금, 가지, 상추 등등 야채가 수시로 올라왔다.
이젠 누가 그런 거 신경 쓰겠느냐 싶어 마트에서 조금 사 먹고 말아야지 싶었던 차였다.
돈으로 치면 얼마나 될까마는 그것은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이었다.
동생이 그 사랑을 보내어 준다고 한다.
내 동생은 자동차 정비사다.
신체적 불편함이 있는 이 아이가 먹고사는데 지장이 있으면 안 된다고 아버지가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 아이는 손재주가 좋아 차를 잘 고친다.
때로는 고장 난 고깃배를 고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동차나 배가 고장이 나면 내 동생을 부른다.
통영 사람은 목청이 크고 투박하다.
사투리로 크게 말을 하면 다른 지역 사람들은 싸우는 줄 알고 지레 겁을 먹는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그들만큼 순박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없다.
(가끔은 통영사람인 나도 목소리 만으로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내 동생이 전형적인 그런 통영사람이다.
그래도 주눅 들지 않고 세상과 당당히 맞서 살아가는 걸 보면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적어도 겉으로는 기죽지 않고 마음으로 삼키고 살아가는 내 동생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