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 넓은 등을 기억합니다.

아버지 기일에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by 꿈꾸는 덩나미

아버지는 멸치배를 타셨다.

집에는 두 달이나 석 달에 한 번씩 들러 어린 우리 얼굴을 살펴보고 혼자 자녀 양육에, 맞벌이에 지친 어머니를 위로하시고는 하룻밤 주무시고 새벽 일찍 집을 나섰다.

어쩌다 일주일씩 머무르시기도 하셨는데 그때는 농사일을 거들기 위해 바쁜 날들을 보내셨다.


어머니는 새벽 일찍 집을 나서는 남편을 위해 김칫국에 콩나물을 듬뿍 넣고 식은 밥을 넣어 장국밥을 끓여 드렸다.

특별한 재료를 넣지 않았음에도 꽤 시원하고 칼칼한 장국밥이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장국밥은 어린 우리 차지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장국밥을 좋아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옛날 어머니가 해 주시는 맛은 나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새벽 일찍 일어나 마루에 나란히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셨다.

내가 첫 생리를 한 이야기, 아이들 학비가 모자라는 이야기, 이번에는 누구네가 내놓은 밭을 사자는 이야기...

두 분의 그런 모습이 얼마나 내게 안정을 주었는지 그때의 부모님보다 더 나이가 든 지금도 내 머릿속에 여전하다.


아버지는 고명딸인 나를 무척 이뻐하셨다.

어머니가 엄하신 반면 아버지는 자상하셨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셨고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잠들기 전 아버지의 무릎을 베고 장화홍련의 이야기, 심청이 이야기, 내 다리 내놔라~하는 무서운 이야기도 다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이다.

무서운 이야기를 얼마나 실감 나게 해 주시는지 한동안 밤만 되면 화장실엘 갈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유전자를 많이 물려받았다.

덕분에 적당히 그림도 그릴줄 알고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를 각색하여 어린이집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아이들은 어렸을 때 나처럼 무서워하면서도 자꾸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아버지는 줄담배를 피우시는 걸 좋아했다.

결혼 후 친정엘 가면 온 집안에 아버지의 담배 냄새가 찌들어 한 시간만 지나도 그 냄새가 스며들었다.

내 새끼들에게 행여 좋지 않을까 싶어 "아버지! 제발 밖에서 담배 피우세요"라고 말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입고 온 외투만 바깥에 걸어놓거나 뒤집어 놓아 최대한 냄새가 스며들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면 어머니는 내가 유별나다고 못마땅해 하시기도 하였다.


또 아버지는 메모하는 걸 좋아하셨다.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난 내가 어디에 가 있는지 주소와 전화번호를 여기저기 적어두고 머리맡에 보관하셨다.

여차하면 나를 찾으러 올 것처럼...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아버지는 봉건적인 사고를 가지신, 말 그대로 옛날 분이셨다.

한자가 익숙한 분이셨고 명심보감을 줄줄이 읊어대셨고 딸보다는 아들이 잘되어야 한다는 분이셨다.


부모님은 작은 오두막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셔서 거기서 우리를 낳으셨다.

4남매가 자랄수록 집은 더 좁아졌고 이사를 하자는 어머니의 성화에 계속 망설이시다가 "더 이상 당신하고 못살겠어요."라는 어머니의 선포에 겁을 먹고는 이사를 감행하셨다.

작은 땅이지만 내 땅이라고 살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판단과 노력 덕분이었다.


아버지는 모험을 두려워하셨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마지막 눈을 감으실 때까지 염려했던 이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아들이었다.

"내가 눈을 감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자식 놈 두고..."

나이 들어 혼자 살아가는 큰 아들이 눈에 밟혔을 것이다.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하늘이 부르시는데...


아버지는 이렇게 무더운 날 당신이 평생사신 그 집에서 세상과 작별을 하셨다.

아버지의 유골은 내 손으로 뿌려 드렸다.

그 부드럽고 따뜻했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장맛비가 억수로 퍼 붓던날, 마을 뒷동산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 뿌려 드렸는데 아버지의 유골은 빗줄기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아버지 기일이다.

달력에 표시를 해 두었건만 나는 모른 척 이 하루를 보내려고 한다.

어차피 고향 통영까지 갈 수 없으니 동생에게 아버지를 부탁하고 나는 이곳에서 아버지를 추억하며 감사했던 마음을 전한다.


착하고 순박하고 가족들을 위해 평생을 사신 내 아버지~

어여쁜 우리 어머니와 저세상에서 마음껏 행복하고 평안하시기를 ~ 이 딸이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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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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