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이는 나이 많고 능력도 그다지 없고 데려갔다가는 월급만 더 많이 줘야 하는 나뿐이었다.
예전에는 무엇이든지 자신이 있었고 도전해 볼 용기도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감이 점점 줄어들고 의기소침해져 갔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 많고 경험 많은 사람을 환영하는 곳은 드물다.
하기야 나이 든 사람이 물러나야 젊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생기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해도 나이가 많든 지 적든지 먹고살아야 하는 건 똑같은데 한순간 직장을 잃은 사람들에겐 힘들고 서글픈 일이다.
나는 오랫동안 어린이집일을 했다.
거의 30년 가까이 이 일을 했으니 이 일에 있어선 전문가이다.
가끔 농담 삼아 가족들과 친구들 앞에 “난 대통령 표창장을 받아야 해. 대한민국의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키웠으니.”라고 말을 하곤 했다. 이것은 어쩌면 나의 진심이었다.
평소에 나는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작은 내 자식들을 키우기 위한 직장이 필요했고 가장 쉽게 발 디딜 수 있는 일이 어린이집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몇 해 동안은 너무 힘들어 이러다가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만성피로에 시달렸고 성대결절은 달고 살았다.
지금은 아동 대 교사 비율이 정해져 있지만 그 당시에는 아이들을 차고 넘치게 교실에 밀어 넣었다. 구청에서 감사라도 나오면 아이들 중 몇몇은 실내 놀이터로 빼 돌리기도 했다.
교사들에게 복지란 건 전혀 없었고 월급은 너무 야박하여 늘 당겨 쓰기 예사였다.
하루는 몸이 너무 좋지 않아 병원 응급실에 누워 수액을 맞는데 이렇게 편안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내 소원은 병원 침대에 일주일만 누워 있는 것이 되었다.
참 옛날 말이다.
중간에 몇 번 다른 일을 해 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전업주부였던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이 일은 나에게 편안해졌고 아이들과 학부모와도 소통이 잘 되었다.
점점 익숙해져 어느새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은 유아기를 지나 청소년기를 거쳐 청년이 되어갔다.
거리에서 마주쳐도 모를 정도로 멋지고 어여쁜 사회 구성원이 되어갔다.
내가 늙어 가는 속도보다 더 빨랐다.
새댁이었던 나는 어느새 흰머리 희끗희끗한 보육교사가 되어갔다.
그리고 폐원은 나에게 실업급여를 타야 하는 백수로 만들었다.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마음이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뭘 하고 살아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실업급여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고 그렇다고 시간을 이렇게 허비하는 건 나와 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내 꿈을 생각해 보았다. 참 꿈이 많은 아이였다.
소설가가 되어 내가 꿈꾸는 세상을 글이란 도구를 이용하여 조물주처럼 멋지게 창조해보고 싶었다.
이 나이에 도전한다면 늦어버린 걸까?
작가들에겐 정말 미안하고 부끄럽고 죄송하다.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문학에 대해 공부를 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죽기 전 꼭 한 가지를 할 수가 있다면 글을 한번 써 보고 싶은 마음이다.
글 쓰는 걸 그렇게 우습게 여기다니? 우습게 여겨서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 내 주변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조곤조곤 들려주고 싶을 뿐이다.
이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그들은 이런 삶을 살았구나 하고 들려주고 싶을 뿐이다.
때로는 갈등이 심심찮게 찾아온다.
‘내가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어린이집 일이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해야 하지 않을까? 아냐, 지금 글 쓰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못 할지도 몰라.’
실업자가 되고 보니 시간 관리도 힘들었다. 잘 짜인 틀 안에 살다가 갑자기 시간이 나를 관리해 주지 않을 때 적잖이 혼란스럽기도 했다.
글도 갑자기 줄줄 써지는 게 아니었다. 그럼 에도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익숙한 틀을 깨뜨리기 위해 내 속에 잠들어 있는 용기를 깨우기로 했다.
새로운 도전!!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알지만 나는 그것을 선택했다.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읽고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용센터에는 나처럼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겹겹이 줄을 서서 교육을 받으러 들어갔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대한민국 전체로 보면 그 인원이 얼마나 많을까 짐작이 된다.
그들도 지금 내 마음처럼 씁쓸하면서도 어딘가 침체되어 있는 용기를 끄집어내려고 애쓰고 있을 것이다.
특히 한 가정을 책임진 가장들의 마음은 더 헤아리기 힘들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우리는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고 하기 싫어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억지로라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 직업은 여전히 나의 우월감을 나타내는 한 방편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이니, 전문적인 일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실업자에게도 특권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의 종류도 좋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 보는 것이다.
능력이 있으면 더 편하고 전문적인 일도 좋겠다. 하지만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지 알아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여겨진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백수가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청년실업은 이미 우리 사회의 큰 숙제이다.
청년들이 일을 하지 않고 그들의 동굴 속에서 세월을 보내는 소식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일의 소중함과 노동의 가치를 심어주지 못한 결과이다.
내 삶의 주인은 나이고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볼 권리가 있다.
그 삶 속에 직장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경제적 풍요와 더불어 일을 통한 성취감뿐 아니라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니 말이다.
나는 보육교사로 살아온 지난날들을 감사한다.
그 일로 인해 두 아이를 키워냈고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불리며 그에 걸맞게 살려고 노력했다.
내 손을 거친 아이들은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저마다의 역량을 자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제 나는 내 일에서 은퇴한다.
나를 위해 축하의 꽃다발 하나 없고 상패 하나 없지만 나는 열심히 아이들을 사랑했고 최선을 다했다.
이제 온전히 나를 위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참이다.
작은 두려움도 있지만 오늘은 나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이 땅의 백수와 백조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다시 기회가 왔습니다. 우리 마음속의 용기를 끄집어내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