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겨울을 탈출한 백수의
카리브해 여행

겨울을 피하는 대신, 겨울로 들어가기로 했다

by 느린 계절

캐나다의 겨울, 특히 올해 겨울은 유난히 길고 매서웠다.

전역에 폭설이 이어졌고, 추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캐나다에는 ‘스노드(snowbird)’라는 말이 있다.
겨울이 되면 플로리다, 멕시코, 카리브해 등 남쪽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속어다.
단순한 여행객이 아니라, 계절에 따라 이동하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사람들.

추위를 견디는 대신 떠날 수 있는 사람들. 이 단어는 캐나다 중산층의 또 다른 자화상처럼 느껴진다.

겨울을 견딜 필요가 없는 사람들, 견딜 의무를 소비로 대체할 수 있는 사람들.


겨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


최근 캐나다에서 처음 해고를 경험하고, 박사 과정 지원과 여러 일들이 겹치며

숨 가쁜 시간을 보내던 나를 위로하기 위해 남편은 카리브해의 세인트마틴 여행을 준비했다.

그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남편에게는 일종의 확인 과정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겨울이면 연례행사처럼 스노드 대열에 합류하는 사람들,

겨울을 견디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계절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의 세계에

자신이 속해 있다는 확인.

스노드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다.
추위를 견딜 의무를 돈으로 대체할 수 있는 사람들.

남편의 욕망은 캐나다 중산층의 전형적인 욕망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욕망을 이해하면서도, 여전히 그 세계의 일부가 되는 일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이 떠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동안의 지친 시간에 대한 재충전, 그리고 캐나다 겨울로부터의 잠시 탈출.

그 자체로 충분히 짜릿한 순간이었다.


캐나다에 온 이후 스노버드 여행은 우리 부부의 작은 겨울 의식이었다.
그러나 일과 학업을 병행하던 나의 일정 탓에 여행은 늘 4~5일 남짓한 짧은 이동에 가까웠다.
잠깐의 햇볕, 그리고 다시 눈 덮인 현실. 낭만이라기보다 탈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올해는 달랐다.

일정에 쫓기지 않는, 어쩌면 처음으로 경험하는 백수로서의 여행의 여유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실직 덕분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스노버드가 되었다.

노동이 멈춘 덕분에 이동할 수 있었고, 이동할 수 있었기에 비로소 ‘여유’를 경험했다.

우리가 떠난 시기는 1월 중순에서 후반, 마치 계산된 것처럼

내가 사는 토론토의 폭설을 정확히 피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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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된 섬에서 다시 만난 한국


우리가 향한 곳은 카리브해에서 유일하게 프랑스령과 네덜란드령이 공존하는 세인트마틴 섬이었다.
지도 위에서는 한국 제주도만 한 크기의, 카리브해에서도 아주 작은 영토를 가진 섬이지만,

현실에서는 경계와 욕망이 겹쳐진 작은 세계였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비행기 착륙지로도 유명하다.
비행기는 해변 위를 스치듯 내려오고, 항공기의 그림자가 사람들의 머리 위를 지난다.
위험과 휴양이 겹쳐 있는 풍경. 나는 그 장면이 어쩐지 내 삶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크지 않은 섬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크루즈선이 정박하는 곳 중 하나다.
언어와 국적, 통화가 뒤섞이고, 사람들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삶을 전제로 존재한다.
이곳은 휴양지가 아니라, 이동성 자체가 정체성이 되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바다.
세인트마틴의 바다는 믿기 어려울 만큼 투명한 청록색이었다.
빛에 따라 푸른색이 되었다가, 옥색이 되었다가, 때로는 유리처럼 보였다.
햇빛이 물 위에서 부서질 때마다 바다는 수천 개의 언어로 반짝이는 것 같았다.

소금 냄새가 공기를 채우고, 바람은 피부 위를 스치며 결을 남겼다.
파도 소리는 일정한 주파수처럼 귓속에 남아, 마치 이곳의 시간을 측정하는 시계 같았다.

나는 그 색과 냄새와 소리를 보며 한국의 바다를 떠올렸다.

한국의 바다와는 분명히 다른 듯했지만,
거제도와 남해, 통영에서 보았던 그 익숙한 바다의 결이 떠올랐다.
지구 반대편의 카리브해에서, 나는 다시 한국의 해안을 보고 있었다.

파도는 낯선 언어처럼 들렸지만,

물의 색은 이상하게도 모국어처럼 친숙했다.


그런데 이 섬에서 내가 가장 먼저 놀란 것은 한류의 존재감이었다.

해변가 바에서는 K-pop이 흘러나왔고, 기념품 가게에는 한국어가 적힌 티셔츠가 걸려 있었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크지 않은 섬에 한국식 바비큐 음식점이

여러 곳 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직원은 내 여권의 출생지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보자 반색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들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캐나다 여권에는 출생지가 표기되어 있어 내가 한국 출신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겠지만,

그는 무엇보다 내가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에서 본 사람들과 닮았다고 말했다.

캐나다 이주 이후 남편과 함께 카리브해를 여행할 때마다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내가 떠나온 문화가 얼마나 멀리 확산되어 다시 나를 호출하는지 실감하는 순간들이었다.

지구 반대편의 한국과는 아직 직항도 연결되지 않아 미국이나 유럽을 거쳐

보통 20시간 이상이 걸리는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카리브해 사람들이 한국 대중문화에 친숙해하는 모습은 늘 새로웠지만,

이번 세인트마틴 여행에서는 그 새로움조차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풍경처럼 느껴졌다.


나는 한국을 떠났고 국적도 바꿨지만, 얼굴은 여전히 출신을 발음하고 있었다.

한국을 떠난 지 오래지만, 한국은 나를 떠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때 다시 깨달았다.
나는 캐나다로 이주했고, 다시 카리브해로 이동했지만,

한국이라는 감각은 국경을 넘어 계속해서 나를 따라왔다.

떠나온 장소는 멀어졌지만, 떠나온 문화는 오히려 더 멀리 확산되어 나를 다시 붙잡았다.

디아스포라의 삶은 늘 이동의 연속이지만, 동시에 지워지지 않는 호출의 연속이다.
떠났지만 완전히 떠날 수 없고, 속했지만 완전히 속할 수 없는 상태.
세인트마틴의 강한 햇빛 아래에서 나는 내가 어디에 속하는가 보다,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겨울을 피하는 대신, 겨울로 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해고 이후 백수가 되었고, 백수이기에 스노버드가 되었고, 스노버드로서

다시 한번 디아스포라임을 절감하는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년에는 더 장기적인 스노버드 계획을 세우고 싶어 했다.

최소 한 달, 가능하다면 더 길게. 그는 겨울을 떠나는 삶이 점점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겨울을 떠나는 삶은 분명 매혹적이었다.

그래서, 열대의 카리브해를 떠나 다시 토론토의 겨울로 돌아오는 심정은,

내가 결국 나의 겨울을 다시 마주해야 한다는 구조적 현실을 상기시키는 순간이었다.

나 역시 남편처럼 겨울을 떠나는 삶을 나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은밀한 욕망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겨울이 싫어서 겨울을 떠난다고 해서 겨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겨울을 건너는 또 다른 방법은, 겨울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겨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겨울을 견디는 대신, 겨울을 타는 법을 배우는 것. 겨울 속에서 기쁨을 찾지 않으면

내 삶에서 기쁨만 줄어들 뿐, 겨울은 그대로일 테니까.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내년 겨울은 더 따뜻한 남쪽이 아니라, 더 추운 북쪽으로 가자고.

아니, 굳이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놓치고 있던 겨울의 즐거움을 찾아보자고.

춥다고 집 안에만 있지 말고, 동네 공원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자고.


물론 남편이 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겨울이기 때문에 떠나는 대신,

겨울 속으로 들어가 겨울을 즐기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하며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이번 겨울은 ‘백수의 겨울을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백수의 겨울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마도 나는 이제야 비로소 이 나라의 겨울뿐 아니라,

나의 겨울 속에서 살아보려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겨울이 나를 멈추게 하는 계절이 아니라, 나를 다른 속도로 걷게 하는 계절일 수도 있겠다고.
눈 덮인 거리, 얼어붙은 공기, 느려진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의 속도를 만날지도 모른다고.

해고 이후의 백수라는 겨울, 이민자로서의 겨울, 그리고 캐나다의 긴 겨울.
그 모든 겨울을 건너려 애쓰기보다, 그 안에 들어가 잠시 머물러 보기로 했다.


어쩌면 그것이 이번 스노우버드 여행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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