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미드타운을 걷다
스노우버드 여행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겨울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여전히 2월 말의 강추위가 이어지는 토론토였지만, 오늘은 집 밖으로 나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은행이나 병원, 장을 보러 갈 때를 제외하면, 백수가 된 이후 한겨울에 아무 목적 없이
집 밖으로 나서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달랐다. 추위를 피해 달아나는 대신,
그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아침에 눈이 내린 2월 말의 토론토였다.
공기는 여전히 매서웠지만, 햇살은 산책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미드타운의 집을 나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이 지역을 가로지르는 중심 도로, Yonge Street였다.
남과 북을 잇는 이 길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긴 도로’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던,
도시의 상징 같은 존재다.
토론토는 이 길을 중심으로 나뉘고, 또 이 길을 따라 성장해 왔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생각했다.
‘길을 잃을 일은 없겠구나.’
영 스트리트만 찾으면, 길치인 나도 이 도시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는 않으리라고.
그러나 단순해 보이던 그 직선의 길은, 시간이 흐르며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 스트리트를 걷다 보니, 익숙했던 풍경이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사실이 또렷해졌다.
나는 이 미드타운의 오래된 벽돌 건물들, 백 년의 시간을 품은 건물 안에 자리한
카페와 상점들을 사랑해 왔다. 각기 다른 문화의 향이 배어 있던 음식점들,
작은 인테리어 숍과 부티크가 만들어내던 빈티지한 결 역시 내가 이 동네를 아끼는 이유였다.
어쩌면 나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 미드타운이 지닌 독특한 매력에 이끌려 남편의 프러포즈에 응하고 캐나다 이주를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이주 이후, 낯선 나라에서 마음이 흔들리던 순간마다,
이 동네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조용히 나를 붙들어주었다.
영국과 프랑스 전통 위에 수많은 이민자의 문화가 겹겹이 쌓여 있던 거리.
이곳은 ‘이민자의 나라’라는 캐나다의 정체성을 가장 일상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코로나를 전후로 거리의 표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격조 있던 중국 음식점, 내가 애정하던 이탈리아·헝가리 식당, 오래된 영국식 펍,
한국인 주인이 운영하던 작은 스시집까지, 보물처럼 아끼던 공간들이 하나둘 사라져 갔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철거를 기다리는 낡은 간판이거나,
이름을 얻지 못한 채 비어 있는 유리창이었다.
혹은 어디에서나 본 듯한 프랜차이즈의 반듯한 로고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는 건조하지만, 그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언제나 사람의 시간과 기억이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변화를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늘, 백수의 시간으로 천천히 걷는 이 거리에서 그 상실감은 유난히 또렷하게 다가왔다.
바쁠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균열이, 멈춘 시간 속에서는 선명하게 보였다.
겨울은 모든 것을 드러내는 계절인지도 모른다.
잎이 떨어진 나무처럼, 도시도 겉치레를 걷어낸 채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쉬움을 곱씹으며 발길은 내가 사는 아파트 옆 공원으로 옮겨졌다.
이 공원은 미드타운에서도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눈 위에 남은 수많은 발자국들,
그리고 얼어붙은 그 위에 다시 내려앉은 눈. 올겨울이 얼마나 길고 깊었는지를 말없이 증명하는 풍경이었다.
이 시간에 공원을 찾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개와 산책하는 노인 한 사람,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엄마 한 명. 그들의 느린 걸음에서는 이상하게도 동질감이 느껴졌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겨울 속을 건너는 사람들.
햇살이 번지는 날이면, 이곳은 달리는 발걸음과 튀는 공, 그리고 반려견들의 숨결로 다시 가득 찬다.
이 동네 사람들의 숨을 고르는 장소. 콘도와 재개발의 물결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초록을 지켜내고 있는 작은 오아시스다.
그런데 공원을 걷다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얀 눈으로 고요히 덮인 이 땅 아래가 19세기, 60만 명이 넘는 토론토 시민에게 식수를 책임지던
물의 자리였고,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모습으로 덮였다는 사실. 얼어붙은 겨울의 표면 아래에는, 한때 도시의 생명을 순환시키던 물의 시간이 깊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
도시를 떠받치던 물의 자리는 이제 사람들의 발걸음과 숨을 품는 공원이 되었고, 눈 위를 걷는 나는 그 보이지 않는 흐름 위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에 잠시 걸음을 늦추었다.
도시의 생명을 지탱하던 물의 공간이, 이제는 사람들의 숨을 지탱하는 녹지로 남아 있다니...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이 공원과 주변 지형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늘 궁금하던 이 지역의 지형적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특히 이 공원 앞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미드타운의 숨은 보물,
Rosedale Ravine-로즈데일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을 떠올리자 생각은 더욱 또렷해졌다.
도시 한복판에 어떻게 개울과 강의 지류가 숲과 연결된 계곡을 이루고 있을까, 오래도록 품어온 질문이었다.
이곳이 한때 거대한 물의 자리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 물의 흐름이 지형으로 남아
오늘의 계곡과 이어졌다는 감각이 비로소 잡히는 듯했다.
바쁘게 살아낼 때는 보이지 않던 시간의 층이, 느린 겨울 산책 속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쩌면 이런 발견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한 시간과 겨울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 보겠다는 작은 결심이 있어야만 허락되는 기쁨인지도 모르겠다.
겨울 속으로 들어가 보겠다는 작은 결심.
어쩌면 나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 밖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이 도시의 속살을 천천히 읽어 보기 위해 걸음을 내디딘 것인지도 모른다.
표면은 얼어 있었지만, 그 아래에는 흐름이 있었다.
겨울은 깊었고, 나는 이제야 이 도시의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