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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ul 22. 2022

어느 멋진 날

내 몸안에는 시인이 산다

 직장에서는 부서가 바뀔 때마다 명함을 제작해 준다. 보통 200매가 기본 수량이지만 다 쓰고 재인쇄를 하는 적은 거의 없다. 개인 연락처가 기재되어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만 건네기도 하고 처음 발령을 받고 인사할 때 외에는 별로 활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함에는 부서와 직책, 직장 주소와 일반전화, 핸드폰 번호, 직장 로고가 박혀있다. 부서별로 조금씩 디자인이 다르기도 하지만 대동소이하고 특별할 것도 없는 평범한 일반 명함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명함들을 받지만 직접 만나서 인사를 주고받을 때 외에는 주의 깊게 잘 보지 않는다. 심지어 선거용 명함은 건네받고 바로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본인 홍보에 정성을 들이는 사람의 경우 재생용지나 금박지로 만들기도 하고 캐리커처와 사진, 시각 장애인들을 배려해 점자를 넣기도 한다. 현재 직장이나 직책만 넣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본인을 널리 알리는 것이 절실한 경우나 특히 선거용 명함에는 그동안 경력과 연륜을 최대한 알리기 위해 살아오면서 맡았던 크고 작은 직책들을 빼곡하게 열거하기도 한다. 지연이나 학연이 필요한 경우는 출생지와 초등학교까지 출신 학교도 자세하게 명시한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명함에 가장 넣고 싶은 문구는 아마도 시인, 수필가, 소설가가 아닐까. 학창 시절 글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하게 소설가가 되고 싶다거나 그것이 어려우면 서점 사장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글쓰기에 대한 작은 열망이 있었던듯 하다. 어떤 작가는 시를 쓰지 않아도 시를 읽기만 해도 이미 시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마도 그 말은 시를 쓰고 싶지만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말일 것이다.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평생교육원 시 창작반에 가면 의외로 60대 이상 연세 드신 아저씨들이 많아서 놀랜 적이 있다. 시인이라는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기는 무척 어려운 현실임에도 우리나라처럼 시인이 많고 시집이 많이 출간되는 나라도 없다고 한다. 국민 독서율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고 성인들이 한해 읽는 책이 4.5권 정도밖에 안된다는 통계를 떠올려 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작가를 꿈꾸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고 싶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인데 문사철이 푸대접받는 현대 사회에서 그나마 다행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좋아해 자주 낭송했던 문정희 시인의 시 ‘러브호텔’에서 그녀가 말했듯이 내 몸 안에는 시인이 있고 늘 시를 쓰려고 애써보지만 마음에 드는 건 아주 드물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속에서 꼬물거리는 그 무엇들을 쓰는 연습을 꾸준히 해 볼 작정이다. 딱딱하고 규격화된 직장 명함 외에 내가 간절하게 바라던 문구가 다정한 글자로 새겨진 명함을 쑥스럽지만 뿌듯한 표정으로 건네게 될 어느 멋진 날을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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