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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ul 23. 2022

연습이 필요해

내가 빠져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재직 30년 차를 맞았지만 그동안 맘껏 편히 쉬어본 기억은 없다. 아이 둘을 낳았지만 그 당시는 육아휴직이 흔하지 않았고 출산휴가도 2개월뿐이었다. 다행히 젊기도 했고 몸이 건강한 덕분에 출산 전날까지 출근을 하고 두 달을 쉬고 바로 복귀해서 업무를 이어갔다. 매년 휴가로 쓸 수 있는 날이 20여 일이 되지만 보통 열흘 정도 쓴다. 여름휴가 4~5일과 평소 일이 있을 때 하루나 반나절씩 쓸 뿐 거의 활용하지 않는 탓이다. 정말 감기가 심하게 걸려야 하루 정도 쉴 뿐 아파도 웬만하면 쉬지 않는다. 사실 샌드위치 휴일이 되면 맘 속으로는 이어서 쉬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실행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매번 그런 때마다 가족여행을 간다며 당당하게 휴가를 내는 직원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더 신기한 것은 몇 번 그렇게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자주 휴가를 가는 것을 직원 모두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재직 20년 차가 되면서 20일의 재직 휴가가 생겼다. 휴가를 쓰는 방법은 두 부류다. 일찌감치 하루도 안 남기고 알뜰하게 쓰는 직원과 하루도 제대로 못쓰거나 반이상을 그냥 남기고 반납하는 경우이다. 나의 경우 10년 동안 동유럽 여행과 병원 치료에 14일을 사용했고 오는 6월 초까지 6일이 남은 상태. 일주일 동안 사무실을 비우는 것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일단 직원들에게 선전 포고하듯 말했다. 나 5월 마지막 주에 휴가 갈 거야. 직원들이 그때부터 조급해진다. 그 담주로 미뤘던 계획들도 미리 다 결재를 받아야 하니 맘이 바빠진 것이다. 사실 직원들의 경우 최근 들어 코로나 확진이 되어서, 가족 확진이 나서 등등 거의 1주일에서 열흘까지 출근을 안 한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 나는 다행스럽게 그동안 잘 피해온 덕분에 밀접접촉자 자가격리도 한 적이 없어 쉰 날이 하루도 없었다. 남은휴가 총 6일 중 하루는 포기하기로 하고 휴가 5일을 신청했다. 누가 무슨 휴가냐고 말하거나 태클을 거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눈치가 보이는 것은 왜일까. 휴가 전날 하루 종일 6월 초부터 추진할 계획서 검토에 업무보고 자료 수정에 얼마나 신경을 썼던지 퇴근 후에는 두통 때문에 약까지 먹었다. 아무튼 그렇게 어렵게 휴가를 내고 나는 2박 3일 일정으로 경주 여행을 떠났다. 집에서 무위도식하며 책 읽고 늦잠도 자면서 여유롭게 보낼까도 싶었지만 그러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휴식에는 많은 고민이 따른다. 이제 휴가를 내면서 눈치를 볼 시기는 지난 것 같은데 여전히 하루 이상의 휴가를 쓸 때는 왜 이리 신경 쓰이는 일이 많은지. 이날은 교육이 있고 이날은 회의가 있고. 타 부서도 요즘에 이러저러해서 바쁜데 괜찮을까까지 생각이 번지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동기 팀장은 정 반대다. 골프를 사랑하는 그녀는 유연근무를 신청해 5시면 퇴근하고 골프 라운딩이 있는 날은 평일 휴가도 자주 활용한다. 가끔 지적질을 하기도 하지만 내심 부러운 날도 있다. 너무 오랜 직장생활에 젖어 살면서 내가 없으면 사무실이 안 돌아갈까 염려하거나 자리를 비우는 것 자체에 부담을 갖고 있음에 분명하다. 되돌아보면 유럽여행을 갈 때 세 번을 비롯해 제법 긴 휴가를 냈었지만 사실 내가 없다고 해서 큰일이 생기거나 문제가 있었던 적은 없었는데도 말이다. 


일할 때는 일하고 쉴 때는 쉬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실천은 못하고 있는 지극히 소극적인 직장인 캐릭터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내일과 모레는 1박 2일 일정으로 여수 여행을 떠난다. 주말보다는 평일을 포함해 떠나야 차도 덜 밀리고 일단 쉰다는 해방감에 하루씩 휴가를 내고 떠나기로 한 것이다. 나는 물론 내일까지 휴가이므로 그냥 떠나면 된다. 어제 모임 총무인 그녀가 단톡에 이렇게 올린다. 다들 내일 휴가 낼 준비하고 계시죠.라고. 일을 더 잘하는 방법보다는 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볼 때이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고 하지 않던가. 내 안에 에너지가 다 바닥나기 전에 내 안의 에너지 상태를 살펴보고 이제 휴가를 떠날 때는 눈치 안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 휴가는 어차피 내 몫이고 나는 충분히 쉴 만한 사람이니까. 어제 짐을 풀었는데 다시 1박 2일 짐을 싸야 한다. 내일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오늘은 종일 푹 쉬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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