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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Nov 02. 2022

"가을아 기다려!"

주말이 오면 어김없이 걸려오는 전화. 아니 간혹 내가 먼저 걸기도 한다. 주중에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전화도 제대로 못한 일말의 미안함이 스며있는 행동이다. "뭐 해"라는 질문에 먼저 내 안부를 묻는 엄마. "요즘 많이 바쁜가 보다"라며 이내 딸의 건강과 안전을 걱정한다. 그리고 느린 목소리로 "오늘은 뭐하는데..."라고 물으신다. 미안한 말투로 "오후에 일정이 있다"라고 답하면 바로 "오늘은 나도 바빠"라고 급히 둘러대신다. 


혹여나 당신을 보러 못 가는 내 마음이 불편할까. 오전이라도 쉬어야 하는데 쉬지 못하고 당신을 보러 올까 미리 할 일이 많아 바쁘니 오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염려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지내는 중이라고 부연설명까지 하신다. 최근 한 달여 동안 주말마다 반복된 통화. 바쁘다는 말에도 가면 엄청 반가워하실걸 알면서도 못 이기는 척 "알겠다"라고 대답하며 무심하게 전화를 끊는다. 코로나19로 많은 행사가 취소되었던 시기가 그나마 딸 노릇을 제대로 했던 시기였다.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소소한 일상들이었지만 무척이나 좋아하셨던 시간들.


칠십 평생 내어 주기만 하는 당신. 곱고 하얗던 손가락은 뭉뚝하고 비뚤어지고 날렵하던 허리는 굽어서 키가 더 작아지셨다. 늘 주면서도 이미 준 것은 다 잊어버리고 못다 준 것만 기억을 하는 사람. 내가 좀 더 힘들고 고되면 자식이 더 편안하고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늘 더 늦기 전에 조금 더 자주 찾아뵙고 함께해야지 하면서도 그 일이 왜 이리 어려운지. 건강을 염려하는 그녀를 위해서 조금 더 느슨해지고 부족함이 없는 자랑스러운 자식으로 살고 싶은데 그 일 또한 맘 같지 않다.


고관절이 금이 가서 한 달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시어머니의 안부 또한 늘 염려스러운 즈음. 통화를 할 때마다 괜찮다고 말씀하시며 오히려 내 안위를 염려하시는 당부의 말에 맘이 찡해진다. 실상 알고 보면 제대로 못 지내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 다 좋고 괜찮다고 하시는 그 마음. 평생 다 내어주고 빈 주머니만 남은 그녀들의 노년이 애틋하기만 하다.


이제는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마음을 알지만 몸 상태가 여의치 못하니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식들의 마음 또한 편치 않다. 지척에 두고도 돌아오지 못하는 집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을까 하는 마음에 안타까움이 앞설 뿐이다.


이번 주말에도 집안 결혼식에 모임이 겹쳐 엄마를 보러 가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일요일 하루 일정은 모두 취소하고 한 달여 동안 허허로왔을 그녀에게 달려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고운 가을 단풍이 다 스러져 버리기 전에 함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밀린 수다도 떨고 맛있는 밥도 먹으면 그녀가 얼마나 행복한 표정을지을지 너무 잘 알기에. "가을아, 기다려! 엄마랑 너 만나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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