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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Nov 03. 2022

안 싸우면 다행이야

너무 잘 알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일들

세상을 살면서 매일 웃고 서로 기분 좋은 일만 있다면 정말 다행스럽고 행복하겠지만 그건 희망사항이다. 내가 아무리 좋은 생각만 하고 이쁜 말만 해도 어렵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싸움의 예는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가깝게는 가족 간의 다툼이나 불화를 시작으로 지인 또는 전혀 모르는 타인과의 언쟁이나 분쟁까지. 그 경우의 수는 무한하다. 물론 그런 불미스러운 상황들이 나에게 아예 없다면 정말 다행스럽지만 그 또한 어려운 얘기다.


보통 싸움은 성격이 비슷한 경우에 더욱 확률이 높아진다. 아무리 한쪽이 흥분하고 화를 내거나 작정하고 달려든다고 해도 상대방이 모른척하거나 회피 또는 무시한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설령 일어난다 해도 금세 사그라들고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하지만 쌍방이 비슷한 성격의 소유자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싸움이 일어날 경우의 수가 그만큼 많아지는 것이다.


한동안 성격 이야기를 할 때면 혈액형을 언급하던 때가 있었지만 이른바 Z세대들은 주로 MBTI로 서로의 성격을 판가름하고 판단한다고 한다. 주로 직무적성검사에 사용되는 테스트인 MBTI는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로 에너지의 방향, 인식 형태, 판단기준, 생활방식 네 가지 척도를 가지고 성격유형을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한 것이다. 미리 서로의 성향을 알면 관계 형성 시 훨씬 수월하고 편안하다는 판단일 것이다.


가족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같은 뱃속에서 나왔는데도 하나에서 열까지 어찌나 다른지 때로는 둘을 섞어 딱 중간이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 간혹 누굴 닮아서 그런 걸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잘 더듬어보면 둘 중 하나의 성향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굳이 성격유형까지 복잡하게 따질 필요도 없이 어느 순간 그들은 눈치채고 만다. 아 우리는 잘 맞는구나 아니면 우린 절대로 서로 맞을 수가 없음을. 그런 판단을 하게 된 순간 그들은 본인도 모르게 서로에 대해 긴장하게 된다. 처음에는 잘 몰라서 똑같은 상황을 반복하기도 하지만 다 예측이 된다면 굳이 에너지를 소비할 까닭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굳이 남의 예를 들 필요도 없다. 우리 가족 또한 예외가 아니다. 서로의 성향을 잘 아는 가족들은 늘 경계를 넘어서지 않으려 애쓴다. 굳이 상처를 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 아니던가. 그 선을 넘어가면 분명히 문제가 되고 싸움이 될 것을 알면서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임계점을 넘어서 되돌릴 수 없는 돌발상황이 일어나곤 한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깨닫는다. 이 또한 애정이 있기에 벌어지는 파이팅이며 단지 표현방식에서 잠깐 문제가 된 것임을. 내가 말한 의도를 그가 달리 해석하거나 잠시 내 진심을 이해받지 못한 것이 서운해서 일어난 일이다. 가족이니까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생략한 몇 마디 말 때문에 또는 이해받고 싶은 마음들이 잠깐 엉키면 서로에게 작은 생채기를 주는 것이다. 


매일 서로 웃으며 이쁜 말만 주고받고 산다면 정말 좋겠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조금 더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일. 내 입장을 우선해 말하기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한번쯤 판단해 보는 일. 내가 옳다고 여기는 일이 그 또는 그녀도 정말 옳은 일로 여기는지 입장 바꿔 생각해보는 일. 혹여라도 아주 가까운 이들과 예기치 않은 다툼으로 오해가 불거지거나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늘 자신을 돌아보면 좋겠다. 사실 글로 쓰는 나 또한 이론으로는 너무 잘 알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일임을 알기에 실천을 장담하기는 어려운 일들이다. 안 싸우면 정말 다행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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