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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Nov 13. 2022

걱정 없는 사람은 없다

10여 년 넘도록 가끔 모여 점심도 먹고 애경사를 챙겨주는 그녀들과 어렵게 일정이 성사되어 만나는 날. 식당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같은 사무실에 있지만 부서가 다르니 얼굴 보기도 어려운 탓에 모처럼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는다. 나와 같이 동승한 그녀들에게 "다들 잘 지내죠. 두 분은 걱정거리 없죠"라고 묻자 이내 메아리처럼 돌아오는 대답은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다. "걱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며 작은 한숨을 내뱉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다들 평안해 보인다는 말에 오히려 "나야말로 걱정거리가 없어 보인다"며 "너무 즐겁게 살고 있잖아"라고 반문하는 그녀들. "전혀 아닌데"라는 말에 오히려 그녀들은 의아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타인들이 보기에는 내가 그렇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에 다행스럽기도 하고 왜 그렇게 보일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식사를 하면서 소소한 가정사까지 본격적인 일상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사무실 분위기부터 재수하는 아들, 봉양하고 있는 몸이 불편한 부모님 이야기까지 화제가 다양하다. 모시고 싶지만 엄두가 안 난다는 이도 있고 집에서 모시고 있는데 어렵다는 얘기까지 다들 비슷한 나이 또래라 내 일인 듯 진지하게 몰입하게 된다. 아내에게 너무 많은 책임을 전가하는 동료 남편을 흉보기도 하며 너 나 할 것 없이 백세시대와 사람살이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시간이다.


흔히 인생을 숙제가 아닌 축제처럼 살라고들 말하곤 한다. 숙제는 꼭 해야 할 의무감이 있는 것이니 늘 부담스럽고 때론 머리까지 아파지는 일이요. 축제는 늘 설레고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일이다. 그 말을 접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고 하지만 가지가 두어 개 밖에 없는데도 왜 이리 바람은 매일 불어대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희망하는 욕심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문득 어제는 불교대학 수업을 들을 때 자주 접하던 <보왕삼매론>이 떠올랐다. 중국 명나라 때 묘협이라는 스님이 수행 중 어려움에 닥쳤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을 설파한 내용이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며, 공부하는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등 총 10가지 내용이다. 읽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곤 하지만 늘 수긍만 하는 것은 아니다.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하지만 병이 없으면 좋겠고 삶에 어려움 또한 없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은 희망사항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걱정이 걱정해서 해결되면 걱정이 없겠다는 말처럼 우리는 늘 크고 작은 걱정거리를 숙명처럼 안고 산다. 한 고개 넘어가면 다른 한 고개가 기다리고 이제 좀 평지를 걷겠구나 하고 한시름 내려놓으면 어느새 다른 장애물이 나타나는 것이다. 보기에 다 평온해 보이는 그녀들조차 다들 걱정 한시름 안고 산다는 말에 찐한 동료의식을 느끼는 날. 아마도 이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있는 동안은 '걱정'과는 동고동락해야 해야 할 것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으며 버티고 있다는 그녀들의 심경이 또한 내 마음 같아 가슴이 아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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