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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Nov 29. 2022

해봤어?

아이러니한 인생

늘 새로운 일들이 생긴다. 아니 경험하게 된다. 내가 원해서 만드는 일도 있지만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감당해야 하는 일도 있다. 상사의 추천이나 업무 여건상 도와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경우가 그렇다. 그때마다 고민스럽고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무 자르듯 딱 잘라 거절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즐겁지도 않다. 타 부서 일이므로 일단 부담스럽고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여러 날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말로는 써주는 시나리오 그냥 읽으면 된다고 하지만 발음이 꼬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읽어나가기 위해서는 여러 번 읽어보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발생할 경우에는 적절한 대처 능력도 요구된다. 대본에 없다고 멀뚱하니 관객을 바라보고 있을 수도 없으니 순발력과 알맞은 애드리브가 필요한 상황이 뒤따른다.


이번이 그랬다. 행사는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관계없이 잘해야 본전이다. 마치고 나서 누군가 불만사항이 표출만 안돼도 일부 성공한 행사이다. 그만큼 부담스럽다는 말이다. 더구나 내 업무가 아닌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일부 시기 질투하는 동료들은 내부 사정도 모르면서 술자리 안주거리로 쓰기도 한다. 더구나 이번에는 당일 취미활동을 하는 단체의 행사까지 예정되어 있어 부담은 두배. 업무가 우선이긴 하지만 갑작스레 추가된 일이고 혹여나 실수할까 신경이 쓰였는지 전날 밤에는 잠까지 설쳤다.


그런 날은 덩달아 자꾸 불길한 생각들까지 삐죽거리고 올라온다. 혹시 내일 뭔가 잘못되려고 하는 건가 싶어 더 초조해지는 순간들. 밤 11시가 넘은 탓인지 잠이 오지 않고 자꾸 이런저런 쓸데없는 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다. 혹시 버벅대지는 않을까. 시를 까먹는 상황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소위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결론적으로 당일 큰 탈없이 행사 두 개가 잘 마무리되었다. 물론 성에 차지는 않지만 오히려 관객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상황들이었고 여전히 나 자신만 꺼림칙한 것이었으므로 다행스럽게 여길뿐. 겉으로 보기에는 어쩌면 화려하고 멋진 취미처럼 보이지만 무대에 서는 일은 날이 갈수록 극한 취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여기기도 한다. 행사를 기획하거나 수락할 때마다 다음에는 하지 말아야지 결심해보지만 그때뿐이다. 준비과정이 좀 어렵고 마칠 때까지 많은 신경을 써야 하지만 자꾸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좋은 재능이니 기분 좋게 받아들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긴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며 부럽다고 말한다. 또 즐기면서 하는 일이 아니고 정말 스트레스가 심하다면 그만두는 게 맞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물론 건강을 염려해서 하는 말이다. 한 가지 일을 오래 못하는 내 성미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취미를 10여 년이어오고 있다는 것은 신기할 노릇이다. 아마 적성에 전혀 맞지 않고 힘들기만 하다면 벌써 중도하차했을 것이다. 스트레스보다 즐거움의 무게가 더 크기 때문에 말로는 어렵다고 말하면서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실패가 없다는 것은 무언가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좌절이나 실망이 두려워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면 고인 물처럼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며 삶 또한 지루하거나 발전이 없을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처럼 우리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고 선택한 그 길을 따라 걷는다. 때론 잘못된 선택으로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방향 선회를 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크게 절망하거나 주저앉을 필요는 없다. 그러한 시간을 겪으며 아마도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단단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힘들다고 엄살을 떨면서 여전히 오늘도 미리 겁내고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 '해봤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꿈꾸며 사는 아이러니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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