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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Dec 01. 2022

라테는 맛있다

소소한 행복은 이미 내 안에 있다

겨울인데 봄 날씨라고 입방정을 너무 떨었던 탓일까. 겨울비가 내리더니 하루 만에 가을이 한겨울로 옷을 갈아입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눈발이 날리고 호들갑스러운 기상청 예보에 맞춰 사람들도 완전무장했다. 손에는 장갑을 끼고 롱 패딩과 두꺼운 파카도 꺼내 입었다. 


계절이 헷갈려서 철없이 피었던 장미꽃 안부가 염려되는 즈음. 고요한 사무실에서 요즘 즐겨 마시는 카모마일을 우려내는데 라테 커피 스틱에 눈길이 머문다. 주중에서 피곤함이 더 느껴지는 목요일 아침. 이런 날은 달달함이 더 그립다. 아침나절 정신이 몽롱한 시간에는 커피믹스를 한잔 마시고 오후에 당이 떨어져 기운이 없을 때 또 한잔. 믹스를 예찬하던 날들이 어느새 까마득하다. 라테 또한 마찬가지다. 카페에 가면 고민하지 않고 그 이름을 외쳤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먹거리에 신경을 쓰게 되면서 가장 먼저 끊었던 것이 바로 커피 믹스와 라테이다. 그것이 뭐 어렵냐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람 심리란 묘해서 안된다고 강제성을 두게 되면 더 끌리는 법. 연애의 원리와도 비슷하다. 심한 반대에 부딪칠수록 더 강렬하게 타오르는 심리처럼 금지 품목에 추가되는 순간 더 애틋해지는 마음이라니.


사무실 한편에는 차가 준비되어 있다. 커피를 안 마시는 사람을 위한 녹차와 둥굴레차를 비롯해 블랙커피와 믹스커피, 라테까지. 보통 아침에는 블랙커피를 마시지만 오늘 아침에는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탓인지 도톰한 라테 스틱에 살짝 마음이 흔들리지만 이내 카모마일을 우려내고 진한 생강차를 마시며 그 기분을 잊으려 애쓴다. 사람 마음은 비슷한지 매일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상사도 오늘은 라테에 손길이 머문다. 괜스레 옆에서 얼쩡대다 어느새 라테 한잔을 들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가장 맛있는 밥은 배고플 때 먹는 것이라고 했던가. 아니 몰래 먹는 밥이라고 했던가. 한잔은 부담스러워 반잔을 덜어 그 맛을 음미하는데 나도 모르게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난다.


늘 우리는 행복을 갈구하면서도 이미 행복 안에서 살고 있음은 잊곤 한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이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일. 한 해를 마무리는 송년회 날짜를 정하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일. 카톡에 생일 알림이 뜬 친구나 동료에게 그 또는 그녀의 취향을 떠올리며 책을 선물하는 일. 하루 일과를 마치고 뜨거운 물에 족욕하면서 세상 편한 자세로 미지근한 온기가 도는 소설을 읽는 일까지. 생각해보면 감사할 일도 행복한 순간도 참 많은 날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한마디 말에 심기가 불편해져 흥분하고 그 마음을 삭이지 못해 잠 못 이루던 밤. 그 맘을 글 한편에 폭포수처럼 쏟아붓고 나서야 간신히 추슬러지던 내 모습이 괜히 애잔해지는 아침. 소소함들이 켜켜이 쌓여 잔잔한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떠올리며 힘을 내본다. 나는 이미 행복 속에서 숨 쉬고 있으며 가을 국화가 더디 핀다고 슬퍼하거나 화려한 봄꽃을 부러워하지 않듯이 진한 향기를 머금고 피어날 순간 또한 멀지 않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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