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숙 Dec 07. 2022

세 번 찾은 반지

내 몸에 맞는 옷

그동안 많은 반지를 구입했지만 가장 오래된 것은 연애시절부터 끼고 있는 민자 링 반지이고 가장 최근에 구입한 반지는 불교 만자가 새겨있는 것이다. 그 반지는 왼손 애끼에 끼기 위해 구입했다. 애끼를 끼면 자식이 잘 된다는 말을 들은 기억 때문이다. 설령 반지를 낀다고 해서 정말 잘될 것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왠지 그렇게 하고 싶었고, 좋아하는 종교 의미가 담겨있어 겸사겸사 구입한 것이다.


문제는 반지 사이즈였다. 정확하게 크기를 잰 것이 아니라 동료의 반지를 껴보고 사이즈를 가늠해 인터넷으로 구입한 것이다. 그 정도면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반지는 살짝 헐렁해서 쉽게 빠지곤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끼고 다녔다.


반지를 처음 잃어버린 것은 두어 달 전쯤이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용산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반지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좌석 주변을 돌아봤지만 반지는 없었고 어디서 빠졌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참 동선을 헤아리다 포기하고 핸드백 속을 뒤졌는데 다행히 가방 한편에서 다소곳이 앉아있는 반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쯤이 지난 주말, 지역 예술제 필사 부스 봉사를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또 손가락에 반지가 보지지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나 할까. 분명히 아침에 집을 나섰을 때는 있었는데 언제부터 없었는지 이번에도 전혀 기억이 없었다. 혹시나 부스에 있을까 하고 같이 봉사한 회원에게 전화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그곳에 없을 것 같아 금세 포기했지만 기분은 내내 찜찜했다.


손가락 길이가 다른 것에 비해 짧은 탓인지 크기가 잘 안 맞아서인지 자꾸 빠지는 일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허전한 마음에 금세 같은 반지를 또 주문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사 부스에 같이 있던 회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탁자 밑에 떨어진 반지를 누군가 주워 놓고 갔다며 연락해온 것이다. 당연히 반지 주문은 바로 취소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오전 내내 집에 머물렀고 오후에 다림질을 하다가 문득 바라본 왼쪽 애지가 허전했다. 이번에도 물론 어디에서 언제 빠졌는지 가늠이 안됐고 한참 동안 온 집안을 다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위안이 되는 것은 밖에 나간 적 없으니 집안 어디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뿐이었다. 


잃어버린 찜찜함뿐 아니라 내가 스스로 부여한 의미에 불길함이 깃들까 싶은 엉뚱한 상상을 하며 내린 처방전은 반지를 새로 구입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세 번이나 잃어버린 경험을 떠올리며 한치수 작은 사이즈로 주문했다. 그리고 다음날, 신기하게도 반지는 욕실 구석에서 또다시 발견되었다. 문제는 같은 반지가 두 개가 된다는 사실. 결국 다시 찾은 반지는 딸의 손가락에 끼워졌고 다시 주문한 반지는 취소하는 대신 내가 끼는 것으로 상황이 정리되었다.


살다 보면 옷이나 신발 같은 물건은 물론이고 자리 또한 나와 어울리지 않는 곳이 있다. 욕심을 부리며 작은 옷을 억지로 입어보기도 하고 큰 것을 내 것이라고 우기고 싶은 순간도 있다. 하지만 나와 맞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는 것은 억지로 끼워 맞추어도 불편하고 결국은 못 견디고 벗어버리거나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빠지기 일쑤였던 반지. 애초부터 내 손가락에 맞지 않던 반지는 끼워진 순간부터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거나 어쩌면 나와 맞지 않는 헐렁한 옷과 같은 먼 인연이었는지도 모른다.


한치수 작게 주문한 반지를 기다리며 과연 나는 나와 잘 맞는 옷을 입고 나와 어울리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불편해하거나 힘들어한 적은 없는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욕심내며 잠을 못 이루거나 불안으로 채웠던 시간들은 없었는지. 애초 내 것이 없음에도 헛된 욕심에 연연하며 애쓰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혜롭고 멋지게 늙고 싶다면 한 번쯤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비롯해 내 주변의 것들이 과연 나와 잘 어우러지는 것들인지, 욕심 때문에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들은 없는지 수시로 돌아볼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라테는 맛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