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숙 Dec 13. 2022

"밥이나 묵자"

위로에 대하여 

어떤 말을 들어도 진정도 위안도 되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시비 걸 누군가가 눈에 띄거나 손톱만큼 빌미만 제공해도 기다렸다는 듯 포효하며 물어뜯기 시작한다. 표적을 정해 불을 뿜어내기 시작하면 말려도 소용없다. 서로에게 벌써 생채기가 생긴 후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렇게 한다고 해서 화가 가라앉거나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이미 뛰기 시작한 심장은 벌렁대며 가라앉을 기미가 없고 온 몸의 신경이 다 곤두서 잠을 이루기도 어려워진다. 그런 날 누군가 옆에서 진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려준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 핑계로 슬며시 전쟁을 멈출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날이 그랬다. 기대했던 일이 불발로 끝났고 이해하기 어려운 잣대들이 울화를 돋웠다. 한술 더해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위로 아닌 위로가 더 불을 지폈다. 아니 위로하고 싶어 던지는 말들이 하나도 위로로 스며들지 않았다. 평소에는 충분히 수긍하고 받아들였을 이야기들이었지만 1도 공감되지 않았다. 아니 공감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그랬던 날이 많았을 것이다. 누군가를 어쭙잖게 위로하겠다고 던진 말이 오히려 그의 상처를 더 돋웠을 수도 있다. 차라리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더 큰 위로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제대로 그 사람의 마음을 읽지도 못하면서 이해하는 것처럼 흉내 낸 날들을 돌이켜보게 된다.


용이 불을 뿜어내듯 내뱉는 말들의 포화를 누군가는 말없이 들어주고 누군가는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말하며 공감을 표현한다. 오히려 당사자인 나보다 더 흥분해서 흉을 보거나 불합리성을 지적해주기도 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굳이 정답을 기대해서는 아니다. 그냥 답답함을 말로 풀어놓고 나면 후련하기도 하고 뭉쳐져 있던 화 덩어리가 조금은 작아지기 때문이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실마리가 풀리는 것도 아니지만 장작불처럼 타오르는 불길을 뿜어내고 나면 조금은 차분해지고 열도 식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타인이 나를 인정해주는 정도나 보상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곤 한다. 내 템포대로 잘 걸어가다가도 예기지 않은 상황을 만나거나 브레이크가 걸리면 일순간에 혼란에 빠진다. 과연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그 정도가 심한 경우는 나의 모든 것들을 다 들추어내면서 연민의 존재로 만들어버리기도 하고 자포자기하는 상황까지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잘 못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그들의 판단이나 결정에 흔들리거나 휘청거릴 이유도 없는 것이다. 나는 충분히 잘 해왔고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말도 표정도 위안이 되지 않아도 어차피 추슬러야 할 상황이라면 정리는 빠를수록 좋다. 그렇다고 무조건 참을 일은 아니다. 지나치게 나를 억누르거나 참으면 병이 된다. 울화가 되거나 멍울로 남아 늘 터질 준비를 하는 휴화산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어 더욱 위험하다. 차라리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 낫다. 눈물이 나면 울음으로 개운하게 풀어내거나 지칠 때까지 수다를 떨어보는 것도 괜찮다.


무연한 듯 이제 괜찮은 척 무심코 보낸 카톡 문자에 "맘고생했다. 밥이나 묵자"라는 답장에 가슴이 후드득 거린다. 마음을 다 헤아리는 듯한 긴 설명이나 정황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 마음의 빛깔이나 정도를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가볍게 던지는 그 한마디에 휘청거리는 날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 삿포로에 갈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