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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Dec 14. 2022

치명적인 숙명

보라는 열정과 냉정의 중간 빛이다. 외로움의 빛깔이기도 하다. 아주 깊은 심연의 색이어서 바라보기만 해도 쉽게 끌린다. 좋아하기는 쉽지만 어울리기는 어렵다. 미묘하고 아리송해서 나도 모르게 푹 빠져버리기 쉽지만 내 것으로 만들기는 어려운 색이다. 그 색을 좋아한다면 이미 그는 시인 또는 예술가의 심성을 지닌 사람일지도 모른다. 늘 공상을 즐기고 엉뚱한 말을 하기도 하고 영혼에 자유로움을 불어넣는 것을 즐기고 있는 사람인 탓이다.


그 빛깔을 떠올리면 한여름 뜨거운 햇살을 이겨내고 존재 만으로도 빛을 발하는 보랏빛 수국이 떠오른다. 갖가지 색의 수국이 있지만 그녀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가슴 설레며 찾았던 그곳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지난여름 인근 지역에서 열리는 수국 축제에 다녀온 적이 있다. 화려하고 다양한 자태를 자랑하는 그녀들 틈에서 보라색 그녀들을 찾기가 어려웠다. 비지땀을 흘리며 축제장 곳곳을 누비고 다녔지만 그녀들만 아직 본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듯 입을 꼭 다물고 있었다.


지루하던 병원행을 마치던 날 아들이 들고 왔던 보랏빛 수국. 기차를 타고 달려온 그의 손에 들려있던 보라. 집 근처 몇 군데 꽃집을 들렀는데 보랏빛 수국을 찾을 수 없어 미리 주문해 찾아왔다는 꽃. 어버이 날에도 붉은 카네이션 대신 보라빛 수국을 받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아니 당연하게 여긴다. 보라는 나에게는 숨통이다. 그리고 에너지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녀가 감싸고 있는 날은 우울함이 나를 휘감고 있는 날이다. 푸른 빛깔로 변해버린 얼굴의 그늘을 가리기 위해서. 우중충하게 내려앉은 다크서클을 감추기 위해서. 쓰고 싶지만 써지지 않는 글을 쓰고 싶은 바람을 담은 필통과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펜들의 빛깔로도 머문다.


매일 곁에 물기를 머금고 있는 물병에서도 보라색 빛깔의 물이 흘러내리고 버석거리는 가슴에 한줄기 빛으로 스며드는 산문집이나 시집을 떠받치는 독서대로 서있다. 나를 졸졸 따라다니고 심지어 잠자리에서조차 곁에 머물고 있는 휴대폰도 그를 사모한다. 


1년여 넘게 근무하던 부서가 공중분해되어 흩어지던 날. 같이 호흡하던 그녀와 그가 마음을 실어 보내주던 꽃바구니의 빛깔과 숨결도 보라였다. 보라는 애틋한 마음이다. 동지섣달 긴긴밤 혼자 지새우는 달빛 조각처럼 차갑고 파리하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따스한 숨결을 품고 있는 심장 같은 존재. 혹시, '나 좋아해'라고 물으면 차마 거절하기 어려운 매혹의 존재. 그가 바로 보라이다. 보라는 나에게 치명적인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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