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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ul 28. 2022

그들에게 위로를!

과수원에도 적자생존의 법칙이 존재한다

초여름에 접어들면서 매일 낮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6월 초. 오늘은 부서에서 농가 일손 돕기를 나가는 날이다. 해야 할 일은 사과 적과작업이다. 출근하자마자 직원 10여 명이 작업복 차림으로 농가를 찾았다. 농가 일손 돕기는 매년 농촌 일손이 부족한 즈음 봄과 가을쯤 이뤄진다. 농가에 도착하니 제법 규모가 큰 사과밭이 눈에 들어온다. 이미 한쪽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작업을 하고 있었고 우리도 농장주의 설명과 시범으로 작업요령을 숙지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한 가지에 5~6개씩 매달려있는 사과 중 1개만 남겨두고 솎아내는 것이다. 이 작업은 보통 5월 중순까지 마쳐야 한다. 적과 작업을 마친 나무의 사과들은 제법 자랐는데 미쳐 손길이 미치지 못한 나무의 열매는 올망졸망하다. 솎아내는 작업은 장차 수확하게 될 열매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 솎아내는 것이 아깝다고 그대로 놔되면 영양분을 서로 나눠 흡수하게 되면서 모든 과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기 때문이다. 장갑을 낀 손에 전지가위 한 개씩을 건네받고 각자 나무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쉬워 보이지만 가지가 높은 곳은 고개를 위로 쳐들고, 낮은 곳은 허리를 숙여야 한다. 한 손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오른쪽 엄지 손가락이 눌려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늘을 따라다녀도 해가 중천으로 이동하면서 등에서 땀이 흐르고 얼굴은 물론 모자를 쓴 머릿속도 후덥 해졌다.


 어느새 과수원은 툭 툭 사과 떨어지는 소리와 딱 딱 전지가위 소리만 가득한 공간이 된다. 이제 막 열매를 맺은 작은 과실부터 제법 튼실한 것까지 5~6개 과실 중 중앙에 있는 것이 대부분 가장 튼실하다고 한다. 그 외 나머지 열매는 아깝지만 모두 솎아내는 일을 하면서 우리네 삶도 이와 다르지 않구나 싶어 마음 한구석이 아슴해졌다. 가을에 상품성이 있는 과실을 만들어내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작업. 아직 자랄 준비가 덜 된 것들은 과감하게 쳐내야 하고 열심히 햇빛과 바람을 맞으면서 애써 왔을지라도 부실한 것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다. 때론 정말 실한 것을 남겨두기도 하지만 실수로 떨어지기도 하고 솎아내는 과정에서 엉뚱한 것을 쳐내기도 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존 경쟁에 던져지는 인간. 목표하는 바는 제각각 다르지만 쉼 없이 노력하고 경주한다. 하지만 원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그 목적하는 바를 모두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간절히 원하지만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타의에 의해 불가피하게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두 시간 넘게 작업을 하고 나니 어느 순간 현기증이 밀려오고 나도 모르게 힘들다는 말이 터져 나온다. 올 가을 사과를 먹을 때 경쟁에서 살아남아 그동안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과정들을 거쳐 드디어 결실을 맺은 사과와 그들을 키워내기 위해 땀을 흘렸을 농부들에게 경외를 표하고 먹게 될 것 같다는 동료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역시 사무실이 체질에 맞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더운 날은 시원한 곳에서, 추운 날은 따듯한 곳에서 일하며 살 수 있도록 키워주신 부모님께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힘껏 노력했지만 떨어질 수밖에 없던 불운한 그들에게는 위로를! 늘 달콤한 과일을 먹을 수 있도록 무더위에도 뜨거운 땀을 흘리는 그들에게는 경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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