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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ul 27. 2022

자두의 꿈

따듯하고 여유로운 삶

딸과 어머니의 통화가 길어지는 날은 어김없이 미션이 있는 날이다. 내용은 다양하다. TV를 보다가 감동적인 사연이 나오면 빨리 채널을 틀어 보라는 것이고, 딸들이 보내준 찐빵이나 과일이 맛있거나 양이 많다고 판단되면 아들 집에 나눠주고 싶은 마음까지. 엊그제는 새콤한 자두 한 바구니를 아파트 문고리에 걸어두고 가셨다. 자두를 가지러 갈 수 없다는 딸의 답변에도 꼭 갖다 주고 싶은 마음이 크셨는지 거동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폭염 속을 헤치고 다녀가신 것이다. 이번에 어머니의 요청 사항은 어느 때보다 더 구체적이었다. 갖다 준 자두를 냉장고에 넣어두면 잘 안 먹게 되니 깨끗이 씻어서 아들 눈에 잘 뜨이도록 거실 소파에 놓아달라는 것이다. 일단 맘먹은 일은 확인 전화까지 하실 정도로 꼼꼼한 성격임을 알기에 딸은 구시렁대면서도 심부름을 완수했다. 


이제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지극하다. 특히 어렵게 얻은 아들에 대한 마음은 웬만한 자식사랑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같이 식사할 때 조금 맛있게 먹는듯하면 자꾸 음식을 권하다가 지청구를 듣기도 하고 한때는 철마다 보약을 지어서 보내시곤 했다. 당연히 이 마음들은 친손자 둘에게도 내리사랑으로 이어졌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손자 둘을 다 키워주셨고 여유가 생길 때마다 쌈짓돈을 슬쩍 넣어주시며 그 애틋함을 표현하시곤 한다. 며칠 전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구는 결혼한 지 5년이 된 아들이 애를 안 낳겠다고 선포했다며 손자 안아보기는 어렵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자식을 낳고  기르는 일이 쉽지 않지만 내 자식은 이쁘다고 좀 설득해보라는 나의 말에 부모가 어찌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취직이 하늘의 별따기이고 혹여 일자리를 구해도 적령기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일들을 당연시 여기던 시대는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취업을 하고 연애를 하면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삶이 아니라 소위 능력자들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만큼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워킹맘이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비상사태가 생기면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는 인력 풀이 도처에 있어야 하고, 영끌족이 되어 평생 애를 끓이지 않으려면 부모의 든든한 재력 또한 필수조건이다.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은근하고 무한한 부모의 내리사랑을 받고 자란 젊은 그들이 마음껏 사랑하고, 또 자식에게도 그 사랑을 충분히 주면서 살 수 있는 따듯하고 여유로운 삶을 상상해 본다. 어머니가 갖다 주신 여름 햇살을 받고 자라 다디단 제철 자두처럼 그들의 꿈도 단단하고 야물게 익어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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