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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ul 26. 2022

우리들의 블루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올봄 무렵 즐겨본 드라마가 있다. 이병헌, 차승원, 이정은, 신민아를 비롯해 김혜자, 고두심까지 주연급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 유튜브에서 우연히 드라마 동창회 장면 영상을 보고 궁금증이 생겨 처음 본 회차의 소제목은 <한수와 은희>. 배경은 제주도 바닷가 마을. 그들은 고등학교 동창이며 한수는 은희의 첫사랑이다. 서울로 대학을 갔고 현재 은행 지점장인 한수. 그는 골프선수를 꿈꾸는 딸의 뒷바라지를 하며 허리가 휜 빈털터리 기러기 아빠이다. 갑작스러운 모친 사망으로 고등학교 졸업도 못한 채 학업을 포기하고 소녀가장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든 은희. 그녀는 수산물 가게를 비롯해 카페 건물에 많은 현금까지 갖고 있는 미혼의 억척 알부자이다. 절박한 상황에 처한 한수가 고향 제주에 지점장으로 내려오면서 둘은 상봉하게 되고 은희는 예전의 추억을 떠올리며 애틋해진다. 돈이 궁했던 한수는 은희에게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갔던 목포여행을 제안하게 되면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내 일인 듯 과거를 떠올리며 드라마에 몰입했던 시간, 여행을 하면서 한수에게 건넨 은희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네가 엉망진창 망가져서 나타났으면 난 정말 슬프고 우울했을 거야. 내 추억이, 청춘이 망가진 것 같아서... 이렇게 잘 자라서 내 찬란한 추억과 청춘을 지켜줘서 고맙다.”     


우리는 말하곤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첫사랑이 만나자고 연락이 온다거나 우연히 만날 기회가 생겨도 절대 만나지 말라고. 이유인 즉 푸릇했던 젊은 시절의 멋진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낯설고 늙은 얼굴을 보면 실망할 확률이 백 퍼센트이며, 어떻게 변했든 만나고 나면 예전에 애틋하고 설레었던 감정이 무너지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가슴 한편에서 곱게 자리하고 있는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면 꼭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말 그래야 할까.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은희의 뭉클한 말을 들으면서 과연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제 나이 오십을 넘어섰고 주름도 적당히 생기고 새초롬하던 모습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작았던 키는 더 작아질 것이고 머리숱도 자꾸 줄어들 것이다. 그냥 평범한 아줌마로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나. 초등학교? 아니 중고등학교 시절, 꼭 첫사랑이 아니어도 추억의 한 페이지에 자리하고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나도 저런 말을 들을 수 있을까. 고맙다 정도는 못되고 참 이만큼이라도 지켜줘서 잘 살아줘서 참 다행이다란 말을 들을 수 있으려나.     


링컨은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얼굴은 그 사람의 살아온 삶의 궤적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미 40 능선을 지나 50 고개도 넘어섰다. 늘 불만스러운 얼굴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거나 짜증 섞인 말을 일상적으로 내뱉으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잘 늙어가기 위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나쁜 것만은 아냐. 세월의 멋은 흉내 낼 수 없잖아. 멋있게 늙는 건 더욱더 어려워.....’. 은희가 동창회에서 불렀던 노래 가사가 입안에서 자꾸 맴도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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