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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ul 25. 2022

지극히 감성적일 것

감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법

 모처럼 잡은 등산 일정이 폭염주의보로 틀어졌다. 아니 변경한 것이 맞다. 7월 초임에도 한낮에는 숨을 쉬기 어려울 만큼 습한 기운과 뜨거움이 스며드는 날씨. 정말 아열대 기후가 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이른 더위이다. 한 달 전부터 정해 놓은 등산 일정을 인근 휴양림 트래킹으로 변경했다가 결국은 시원한 영화관으로 선회했다. 이른 영화를 보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일정. 함께 본 영화는 탕웨이와 박해일 주연,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상영시간 138분. 2시간 넘게 영화를 보는 내내 그와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며 그들의 마음을 읽으려고 애썼다. 당신 나라에서는 결혼하면 사랑하는 마음을 중단합니까. ‘붕괴’. ‘단일한’이라는 단어가 귓가에 맴돈다. 결국 그녀는 그의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남았고 그는 거칠게 밀려 들어오는 바닷물 속으로 스러진 그녀를 끝내 찾을 수 없었다. 왜 나쁜 남자들과 결혼했느냐는 질문에 당신과 ‘헤어질 결심’을 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그녀. 아무튼 오랜만에 무뎌진 감성을 가만히 적셔주는 시간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일행 한 명이 하품을 연발하며 지루한 기색이다. 취향에 맞지 않아 힘들게 버티는 중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챌 정도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앞줄에 나란히 앉아 영화에 집중하는 4명의 젊은 20대 병사들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지루해하던 그녀가 ‘나는 역시 감성이 없나 봐’라고 말했고 우리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맞아’라고 맞장구를 치며 크게 웃었다.  멜로물은 특히나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언니. 일행 중의 한 명은 보기에는 단단한 철벽녀 느낌인데 알고 보면 완전 감성녀이다. 그녀는 조금만 슬픈 글을 읽어도 금세 몰입하고 애잔한 사람만 만나도 눈물을 흘려서 가끔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이 영화를 한번 더 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들을 기준으로 놓고 볼 때 나는 딱 중간인듯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감성이 무뎌진다고 말한다. 살면서 이런저런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들을 겪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부대끼다 보니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슬퍼하지도 않게 되는 것일 것이다. 아니면 타고난 성정이 좀 더 예민하고 무른 사람이 있고 지극히 이성적이고 건조한 사람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는 감성이 있다고 믿으며 살지만 건조하고 객관적인 사람이라는 평도 가끔 듣는다. 시나 소설을 읽을 때는 감정을 잡고 몰입하려고 애쓴 덕분에 살짝 가려지지만 일상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 이성들이 불쑥 고개를 내미는 탓이다. 어쩌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상황을 만나게 될 때마다 최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고 애쓰며 살아온 시간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날이 갈수록 삶이 그리고 사람이 팍팍해진다고 말하는 시대, 온기가 묻어나는 감성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면 삶은 더 따듯하고 살맛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나를 비롯해 나와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사람들과 좀 더 마음을 나누고 배려해주면서 사는 일. 매의 눈으로 판단하고 재단하기보다는 늘 고슴도치 자식을 최고라고 믿으며 응원해주는 엄마처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사람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애써 보는 일. 완벽한 나로 살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는 내 마음을 수시로 다독여주며 어루만져 주는 일. 그것 또한 하루가 다르게 틈새가 벌어지는 나의 감성 한줄기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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