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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Dec 29. 2022

천생연분

그녀의 결혼

두어 달 만에 이뤄진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팀원들과 오붓한 점심. 사무실 복도에서 얼굴만 봐도 반가움이 솟구쳐 오르는 그들과 새콤달콤한 소스를 곁들인 바삭한 탕수육, 해물 잡탕밥과 볶음밥을 먹었다. 힘든 날도 크고 작은 행사들도 많았지만 늘 한마음으로 헤쳐나갔기에 더욱 돈독했던 시간들 덕분에 꾸준히 이어지는 다정한 만남. 일은 물론 성격까지 흠잡을 데 없는 그와 그녀들과 맛있는 식사 후 자리한 카페에서 미혼인 그녀가 예식 날자를 잡았다고 말하며 수줍게 웃는다. 


부서를 옮기면서 평일 야근은 물론 주말에도 일에 치여 사느라 청춘사업은 언제 할까 염려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기우였나 보다. 발그레한 얼굴로 남자친구 사진까지 보여주며 설렘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만난 지 4개월 차. 조금 빠른 듯하지만 안정적인 직장과 서로를 신뢰하는 마음이 크다는 증거일 것이라 믿으며 축하의 말과 함께 휴대전화에 결혼 날짜를 저장한다.


지금도 여전히 피천득의 인연이나 황순원의 소나기를 읽으며 가슴 설레지만 숱한 사랑 중에 결혼으로까지 이어지는 '인연'은 세상 무엇보다 크고 깊은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과 달리 예식장에서도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라는 식상한 주례사도 없어지고 재혼이나 혹은 삼혼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시대. 그럼에도 여전히 영원한 사랑을 꿈꾸고 그 마음이 영원할 것이라 믿고 사랑의 맹세를 하며 우리는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게 된다.


연애 때는 눈을 크게 뜨고, 결혼 후에는 눈을 반쯤 감으라고 했던가. 결혼을 하는 순간 연애때와 달리 삶은 연습이 아닌 실전임을 체감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30여 년을 세월을 짧은 기간에 하나로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누군가는 기선제압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밀당을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정면돌파하겠다는 일념으로 수시로 파이팅을 하면서 해결책을 강구하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누가 얘기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체득하게 된다.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저런 때는 저렇게 해야 서로 힘들지 않게 되는 지점을 찾게 되는 것이다.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이제 육아는 물론 가사도 한쪽에 치우치거나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패턴이 아니라 양립의 양상을 띨 때 가정의 수레바퀴가 삐걱대지 않고 원활하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여전히 그런 가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직장은 물론 가정에서도 일방적으로 지속되는 관계는 살얼음판처럼 불안하고 깨질 확률이 높다.


30여 년 가까이 한 사람과 살면서 터득한 것 중의 하나는 마음을 비우면 모든 것이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하나를 주었다고 하나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 즉 산술적으로 계산하는 마음과 기대를 내려놓고 사는 것이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맞추고 살 수 있다면 정말 바랄 것이 없겠지만 아마도 그것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일터. 가끔은 손해도 보고 생각지도 못한 기특한 일을 하면 고맙게 여기면서 사는 것이다. 항상 나 혼자만 손해 보고 참으며 살고 있다고 여기는 날이 많지만 알고 보면 그 또한 말 못 할 속앓이를 하던 시간이  제법 있었으리라.


따듯한 사랑을 하는 덕분인지 화색이 돌고 한결 더 멋진 모습으로 변해가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괜히 가슴에 온기가 스미는 날이다. 겨울이 이렇게 다정하게 저물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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