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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Dec 26. 2022

마지막 버킷 리스트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고.

가끔 그런 상상을 하곤 한다. 내가 만약 시한부 인생이라면,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말을 듣게 된다면 무엇을 가장 후회하고 어떤 일을 제일 하고 싶을까.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어찌 보면 지지리 궁상을 떨며 살던 아주 평범한 그녀가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로 구성된 뮤지컬 영화다. 한때 그토록 사랑해서 결혼했건만 그들의 일상은 특별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낭만이 깃들여져 있지도 않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건강검진 결과를 듣는 날에도 택시대신 버스를 탔다고 남편한테 불호령을 듣고 심지어 화장품값도 아까워한다. 벽 보고 말하듯 반응조차 없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성심을 다하는 그녀. 가족들이 남긴 밥을 먹고 명품은커녕 옷도 제대로 사 입지 못한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그녀는 살아있는 동안 하고 싶은 10가지 일을 메모한다. 단짝 친구였던 현정이 만나기, 운전하기, 명품쇼핑하기, 첫사랑 찾기... 1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사랑받기'. 아마도 그녀 삶을 돌아볼 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에 적은 소망일 것이다. 생일날 그 흔한 선물이나 이벤트 한번 받아본 적 없던 그녀는 남편과 함께 첫사랑을 찾아 떠나게 되고 (결국 혼자만의 짝사랑임을 확인하면서 허탈하게 끝난다) 그녀만을 위한 잔치에서 친구, 가족들의 진심을 확인하게 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생을 마무리하게 된다.


사랑은 주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라고도 말하지만 우리는 늘 사랑을 갈구하고 목말라하면서 산다. 좋아하는 누군가를 위해 사는 일이 즐겁고 설레기도 하지만 열개를 주면 최소 서너 개는 받을 수 있을 때 그나마 삶의 위안을 얻는다. 그녀 또한 그랬다. 시한부 판정을 받아 밤새 잠을 못 이룰 때 마음은 어떤지, 살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지조차 살갑게 묻지 않고 화내고 윽박지르는 남편의 모습이 서운하고 슬프기만 하다. 만약 남편이 그의 진심을 말로 또는 행동으로 적극 표현했다면 그녀가 세월도 가뭇한 첫사랑을 찾아내라고 억지를 부리면서 여행가방을 싸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프면 아프다고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할 줄 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특히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배려하고 위로하는 방법은 더욱 그러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습득하는 것일 것이다. 평소 내 말의 시나리오에는 시간이 산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우리 언어습관에는 성장과정의 지난함과 우여곡절 그리고 스토리가 그대로 묻어난다.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랄 때 비로소 감정 표현 또한 자연스럽고 대인관계도 무리 없이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본인을 힘들게 하거나 그 또는 그녀가 떠날까 하는 불안에 떨며 늘 눈치를 보거나 비위를 맞추며 괴로워하는 일 등이 그러한 예일 것이다.


그녀처럼 극단적이고 슬픈 상황이 도래하지 않았을 때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으며 살고 있는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면 더 바람직하겠지만 늦게나마 좌충우돌 상황을 통해 행복한 존재임을 확인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을 보는데 괜히 울컥해진다. 먼저 떠나는 일은 슬프지만 지인들에게 남은 가족들을 부탁하며 잘 살아달라고 말하는 그녀. 과연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버킷 리스트를 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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