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려고 여러 권의 책을 주문했는데 혹시 읽으려고 했던 것이 있으면 먼저 골라보라는 지인의 카톡이 다정하다. 소설과 시집을 비롯해 평론가의 시화까지 네 권의 신간이다. 묻자마자 소설을 쓴 작가를 좋아한다는 답에 얼른 읽고 공유하겠다는 답글이 도착한다. 이내 책이 두껍기도 하고 여러 권이라 다 읽기에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다며 선택한 소설책 한 권을 먼저 갖다 주겠다는 연락이 온다.
점심식사를 하고 사무실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따끈한 신간 한 권이 그를 졸졸 따라 걸어온다. 시를 좀 더 알고 싶어 평론가가 쓴 시화책도 구입했다는 그의 책 사랑이 존경스럽다. 사실 요즘 들어 송년 모임 핑계로 책을 등한시하고 있음도 찔리는 순간이다. 빠른 시일 내에 읽을 자신은 없지만 책 내음이 반가워 얼른 받아 들고 따듯한 아메리카노와 바닐라라테를 주문한다.
독서 취향도 다르고 나이도 10여 년가량 차이나지만 책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금세 지난다. 실개천보다 얇고 가느다란 책사랑을 늘 크게 여겨주고 서투른 브런치 글을 애독해주는 마음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또한 가까이에 소소한 일상은 물론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큰 행운이라 여긴다.
살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친한 사이라고 여기지만 만나고 돌아서는 순간 맥이 빠지거나 마음이 헛해지는 사람도 있다. 가장 불편한 사람은 착한 것 같은데 매 순간 민폐를 끼치는 유형이다. 그런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심성이 나쁘거나 고의성은 없어 보여서 대놓고 화를 내거나 절교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되도록이면 안 만나고 일부러 연락을 안 하는 것이 상책이지만 인연을 끊어내는 일은 그리 녹록지 않다.
반면에 자주 만나지 못하면서도 가볍게 던지는 말 한마디에도 힘이 되는 사람도 있다. 힘들고 짜증 나는 순간에 왠지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나는 사람. 그 유쾌함이 물감처럼 스르르 번져 가슴에 일었던 파동들이 잔잔해질 것 같은 사람.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아도 편안하고 따듯함이 느껴지는 사람. 늘 인복이 많다고 말하곤 한다. 베푸는 것에 비해 받는 것이 많고 배려해 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를 배웅한 후 건네받은 소설책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와 궁금한 마음에 얼른 첫 페이지를 넘긴다. 김연수 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 그 속에는 얼마나 평범한 미래의 이야기들이 살고 있을까. 진하지 않지만 은은하게 배어나는 나무향처럼 잔잔한 사람들 덕분에 오늘도 '이토록 따듯한 겨울'로 채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