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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an 01. 2023

새해 아침에

 3년 만에 개최되는 해맞이 행사에 가기 위해 오전 5시 30분 알람을 맞추고 잠을 청했다. 계묘년 새해 첫날. 서너 번이나 잠을 깨고 설친 끝에 간신히 제시간에 일어나 완전무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핫팩은 물론 주머니에는 붙이는 핫팩을 넣고 남편 귀마개까지 챙긴다. 겉옷은 가장 두꺼운 패딩으로 골라 입고 양말도 두 개나 신었다. 다행히 날씨는 바람도 불지 않고 그다지 춥지 않다. 15분가량 달려 도착한 해맞이 행사장은 인파가 제법 많다.


이제 막 걸음을 걷기 시작한 쌍둥이 남매를 안고 오는 젊은 부부, 지긋하게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어르신, 이른 새벽부터 교통 안내를 하고 떡국을 끓이며 땀을 흘리는 자원봉사자들까지.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는 밝았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한해를 맞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정겹다. 어떤 이는 소원을 빌기 위해 왔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심기일전하기 위해서 그곳을 찾았을 것이다.


일출 시간을 넘겨 구름 속을 비집고 반쪽 얼굴을 보여주는 해를 보며 잠깐이나마 소원을 빌었다. 오늘 이곳을 찾은 많은 이들은 무엇을 기원하고 기도했을까 궁금해진다. 어린 시절에는 치기 어린 마음에 짧고 굵게 사는 것이 멋있다고 여겼다. 나이가 들면서 평범하게 산다는 것 또한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고 나무처럼 나이테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소원하는 일들의 개수도 더 단순해지고 가벼워진다. 무언가를 많이 얻고 갖기를 바라는 거창하고 큰 기원보다는 가족들의 건강과 안녕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내본다면 이루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 중의 하나쯤 더 이루어졌으면 하는 정도이다.


적십자회원들의 정성이 듬뿍 담긴 떡국에 경관뷰가 멋져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멋진 카페에서 모닝커피까지 마시고 집에 돌아와 가족들을 위해 새해 첫끼 떡국을 끓였다. 한 자리에 모여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맛있는 아침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한 날. 전기 매트 위에서 노곤한 몸을 녹이며 올해로 팔순을 맞은 엄마와 한동안 건강이 안 좋아 아프셨던 시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드리고 김종길 시인의 시 <설날 아침에>를 정성껏 필사한다.


찬 공기 속에 오래 있다 온 탓인지 몸은 이곳저곳 아프지만 부지런 떨며 건강하게 새해첫날을 맞을 수 있어 고맙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시 제 둥지로 떠나는 아들을 현관에서 따듯하게 보듬어 안아주고 그의 안녕을 빌어보는 아침. 거실 창밖으로 시린 겨울을 뚫고 비추는 햇살이 따사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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