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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an 03. 2023

향기 나는 이름

삶은 끊임없이 배우는 일이다

모처럼 남편과 함께 출근하는 날. 아침이면 부지런쟁이가 되는 그는 출근 준비를 마치자마자 차 시동을 걸어놓겠다며 서둘러 현관문을 나선다. 나는 느긋하게 10여분이나 지나 여유롭게 엘리베이터를 탄다. 날씨가 추운 탓인지 찬 바람을 만나는 순간 자동으로 몸이 움츠러드는 이른 아침. 머릿속으로 오늘 할 일을 떠올리며 조수석 문을 연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경고음이 삑삑 울린다. 차에 타면서 내 외투가 문틈에 끼어서 차문이 덜 닫힌 탓이다. 그렇게 5분여를 걸려 사무실 공용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를 마치고 잠금 버튼을 눌러도 미동이 없는 차. 차로 돌아간 남편이 차를 한참 살피다가 하는 수 없이 다시 시동을 켠다. 이미 내 마음속에는 뭘 또 빼먹어서 저런 사달이 난 것일까 싶어 남편에게 지청구를 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한참 차를 살펴보고 내린 그가 큰 소리로 말한다. "조수석 문이 열렸네"라고. 내릴 때 내가 문을 살짝 닫아 열린 상태여서 잠금이 안 됐다는 것이다. 계면쩍어 문을 다시 닫고 아무 일 없던 듯 주차장을 나선다. 이내 그가 말한다. "이번에도 내 탓하려고 했지? 늘 문제가 생기면 나를 돌아보는 습관이 필요해"라고. 미안한 마음에 할 말이 없어져 "요즘 차가 참 똘똘해"라고 말하며 사무실로 향했다.


매번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나를 돌아보기보다는 남 탓을 한 날이 많았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잘못한 것이 없는데 누구는 이렇게 누구는 저렇게 나한테 민폐를 끼치는구나. 내 생각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데 저 사람은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판단을 내린 건 아닐까라고 지레짐작하며 흥분하기도 한다. 가끔 섣부른 판단으로 오해하고 나중에 실제 상황을 알고 나서 아차 싶은 경우도 있다. 그럴 때마다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심기일전하며 다짐해보지만 매번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새해가 되었고 나이 한 살을 더 먹었는데도 마음의 크기와 넓이는 여전히 간장종지 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함부로 누군가를 판단하지 말고 나 또한 말 한마디를 뱉을 때는 한번 더 생각할 것을 다짐해보는 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여물어 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성찰이 필요한듯하다. 늘 좋은 말이 담긴 책을 가까이하고 아침마다 시를 필사하면서 가슴에 담아보지만 콩나물시루에서 물이 빠지듯 매번 제자리인 나를 만나게 되는 시간들. 어느 순간 쑥 자란 기특한 콩나물처럼 나 또한 좀 더 깊어지는 날을 상상해 본다.


닫히지 않고 더 살펴보라고 무언의 시위를 하는 차, 새해 벽두 이른 아침 백지에 자신의 이름을 써 놓고 향기를 맡아보며 잡초 같은 인생이 되지 않길 다짐해 본다는 지인의 카톡 덕분에 작은 깨달음을 얻는 아침. 내 이름에서는 어떤 향기가 풍길까. 모든 이에게 사랑을 받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내 이름 석자를 떠올렸을 때 그냥 기분이 좋아지는, 만나면 반가워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는 사람을 꿈꾸어 본다. 삶은 끊임없이 배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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