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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an 04. 2023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느 시인은 복사뼈 위 살가죽이 마르는 것을 보고 나이 듦을 체감한다고 썼던데 나는 퇴근 무렵 잠이 쏟아질 정도로 피곤하고 무기력해질 때 나이를 실감한다. 피부는 날이 갈수록 윤기를 잃어가고 주름 또한 깊어지고 있다. 심지어 목은 물론 손 등위에도 가느다란 줄이 소리 없이 늘어나고 있다. '노인' 하면 떠오르는 검버섯 비슷한 한 것들이 아직은 보이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싶을 정도로 빠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새해 해맞이에 다녀온 지 벌써 나흘째. 새해 첫날 무리해서 찬바람을 맞은 탓인지 며칠째 퇴근 무렵이면 맥을 못 추고 있다. 잠이 쏟아지고 그냥 눕고만 싶어지는 증세이다. 올해는 건강 식단을 잘 챙겨보겠다고 결심했건만 체력이 안 따라주니 나도 모르게 배달음식을 주문하게 되고 달달한 튀김이나 탕수육에도 은근슬쩍 손을 대고 있다. 나이를 먹으니 어느 날부터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져 한잠 자고 나면 이른 새벽에 깨어나 괴롭다는 선배들의 말이 떠오른다. 일찍 일어나면 할 일이 없어 TV를 보거나 이른 산책을 나선다는 말을 들으면서 몇 살이 되면 저런 증세가 나타날까 궁금했던 것이 바로 며칠 전이다. 그나마 나의 경우 다행스러운 일은 중간에 깨는 일 없이 아침 알람이 울릴 때까지 쭈욱 이어 잔다는 것.


그 고민을 말했더니 "다른 사람들도 다 그래"라는 친구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기대어 후휴하는 아침. 작년과 달라진 것 중의 또 하나는 한동안 즐겨있던 소설책들 보다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는 시집과 산문집들이 더 마음에 스며든다는 것이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스쳐가듯 읽었던 문장들에 밑줄을 긋기도 하고 때론 노트에 필사를 한다.


한동안 붕 떠있던 마음 조각들을 단단히 매어 붙잡아 두는 일도 추가되었다. 타인의 평가나 인정에 목메어 한없이 밖으로만 치닫던 마음들에서 벗어나 남이 아닌 나를 위한 일들에 집중한다. 마음의 안식처인 케렌시아가 있는 소들이 진정한 강자로 거듭나듯이 나를 위한 안식처가 어디인지 아는 나. 남이 좋아하는 일이라서가 아니가 내가 그냥 좋아서 행복해서 하는 일들이 많은 날들로 채우고 싶다.


정성스레 마음을 다해 발행한 브런치 구독자들의 글과 매월 배송받는 월간지들도 좀 더 정성을 기울여 읽으려고 노력한다. 읽다 보면 분명히 내 안에 남는 것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잔주름이 늘어나고 깊게 패일 수 있지만 마음의 결들과 깊이는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방향과 속도가 달라질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보이냐는 질문을 듣지만 받아들일 것은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 또한 지혜로운 삶이다.


한 살 더 먹으니 체력은 더 방전되어 지속적인 충전이 필요해졌지만 마음씀은 더 후덕하고 두터워지고 있다고 우겨보고 싶은 날. 이미 작심삼일로도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여러 가지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다시 신발끈을 매어 본다. 헐렁하게 늘어진 정신줄을 잡아줄 아메리카노의 향이 고마운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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