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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an 05. 2023

아홉 살이 부르는 청춘가

문화원에서 개최된 새해인사회. 지역 단체장들을 비롯해 문화원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덕담을 나누는 자리. 행사에 앞서 서너 개의 문화공연이 마련되었는데 그중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민요를 배운 지 4개월 차를 맞는 9살 소녀의 공연이었다. 고운 한복을 입고 민요 한곡을 구성지게 부르는데 표정이 예술이다. 뜻을 제대로 알지도 못할 것 같은 내용의 노래를 부르는데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생글생글 웃으며 공연을 마친다. 이어 배운 지 3일 됐다는 청춘가를 부르는데 기특하면서도 저 아이가 노래의 의미를 얼마나 알까 궁금해진다. 그렇게 공연을 멋지게 마무리한 소녀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귀여운 인사와 함께 세배까지 하는 것이다.


10여 년 넘게 남 앞에 서는 취미생활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무대 공포증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부럽기만 한 그녀의 표정. 제법 많이 무대에 서는 일을 경험했지만 지금도 시를 외우다 까먹지 않을까. 긴장하기 일쑤인 데다 그렇게 걱정을 하는 날은 어김없이 단어를 빼먹거나 틀리곤 한다. 게다가 표정 또한 아직도 경직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니 최근 들어서는 무대를 서는 일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같이 활동하는 회원들 중에는 실력에 관계없이 무대에 서는 것을 즐기는 이들이 있는데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곱게 화장을 하고 멋진 의상을 입고 남의 시선을 즐기는 일을 즐기는 일은 여간해선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생을 살고도 남 앞에서 말하는 것조차 어려운 숙제로 안고 살면서 고민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 또한 학창 시절에는 수줍음이 많아 그것을 극복하고 싶어 웅변반에 들어간 기억이 있다. 지금은 남 앞에서 대본을 놓고 말하는 일 정도는 어려워하지 않고 긴장하고 있는 것 또한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니 다행스러울 뿐이다.


시를 낭송하면서 가장 큰 고민은 아무 느낌도 전달되지 않는 밋밋한 낭송이다. 한 편의 시를 외워서 낭송하기 위해서는 숱한 연습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시인이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잘 읽어내고 그 느낌을 담아내는 일. 세월이 제법 흘렀지만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 그러다 보니 더욱 부담스러워지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좀 더 공부를 많이 하고 시에 스며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뿐이다.


어떤 일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고 한다. 공자는 가죽으로 맨 끈이 여러 차례 끊어질 정도로 책을 여러 번 읽어야 문리가 튼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반 종이도 아니고 가죽이 끊어질 정도면 얼마나 많이 읽어야 하는 걸까. 그럴 정도로 어떤 일에 정성을 기울이고 열정을 쏟아본 적이 있던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일에 정신을 팔면서 정작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볼 일이다. 좋은 시는 '꿰미'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시인이자 은사님의 신작 시집을 읽으며 다시 한번 반성하는 날. 밤늦도록 책을 읽어 다음날 눈꺼풀이 경련이 일어난 적이 있었는지 진심으로 시를 필사하며 오롯이 집중해 본 날이 몇 날인지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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