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장에 가셨다 돌아오시면 엄마 양손을 먼저 쳐다보는 거야. 빈손이면 실망해서 엄마한테 화를 냈어". 어린 시절 먹었던 시골 통닭에 대한 추억 하나쯤 다 갖고 있으리라. 지금은 비어있는 가게가 많아 예전의 넉넉함과 정겨움을 떠올리기가 어렵지만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찾았던 전통시장 초입에는 통닭집이 여러 곳 있었다. 기름이 넘실대는 큰 솥 안에서 바삭하게 튀겨지는 닭을 바라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던 시절. 기름이 잔뜩 배인 종이봉투를 방바닥에 펼쳐놓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동생이 하나 더 먹을까 곁눈질하며 게눈 감추듯 먹던 고소한 통닭의 맛. 친구는 그 시절 통닭에 대한 진한 향수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시골 부모님 댁을 찾는 날이면 엄마가 그랬듯 어김없이 통닭을 사들고 갔었는데 그나마 남아있던 가게들이 다 없어졌다며 아쉬워했다.
매월 초에 이뤄지는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 12월 초 송년회 이후 한 달여 만에 20여 명의 친구들을 만났다. 새해 인사도 나누고 올 한 해 모임 운영계획도 공유하는 시간.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문과, 이과, 상과를 포함 총 8개 반이 있었는데 문과를 비롯해 이과반 친구들은 모르는 친구가 더 많다. 모임 가입을 권유받고도 오랫동안 망설인 이유도 그것이었다. 나이 들어 낯선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간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던 것.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일단 모임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두어 번 밥을 먹고 나면 오래된 듯 다들 금세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각각 하는 일도 다르고 사는 지역도 제각각이지만 학창 시절 이야기만 하면 십 대로 돌아가는 시간. 식사를 마치고 옮긴 시골 통닭집에서 생맥주 한잔씩을 앞에 놓고 오랜만에 추억 소환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시장에 간 엄마의 귀가를 목 빠지게 기다리던 시간. 해가 어스름해질 무렵 집에 도착한 엄마의 지친 발걸음을 염려하기보다는 손에 든 기름진 간식이 더 반갑던 시절. 아마도 한참 크는 시기이고 주전부리가 넉넉하지 않은 시기였기에 늘 배가 고팠을 것이고, 집 마루 언저리에 앉아 간절한 마음으로 양철 대문을 뚫어지게 바라봤을 것이다.
음식 솜씨가 좋던 엄마는 식당에 가야 맛볼 수 있는 간식들을 손수 다 만들어주시곤 했다. 새콤달콤한 양념소스에 버무린 양념치킨, 중식당 주방장처럼 이쁜 모양 칼집을 낸 당근으로 구색을 맞춘 탕수육, 언제 먹어도 맛있는 짜장면과 지금도 엄청 애정하는 잡채. 집에서 신문지를 널찍하게 펴놓고 그 위에 도란도란 모여 구워 먹던 삼겹살의 맛과 지글대던 소리는 떠올리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어린 시절 고소하고 달큼한 시간들은 가슴 한편에 추억의 음식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두 마리의 통닭을 주문해 놓고 시작된 2차. 장손이 와야 통닭을 먹는다며 기다리는 할머니의 아들 사랑 탓에 온 집안에 퍼지는 기름냄새에 군침을 흘리며 기다리던 시간, 두 개뿐인 닭다리를 두고 옥신각신 했던 그날의 추억들이 오래된 영화처럼 아득하고 따듯하다. 저녁을 많이 먹은 탓에 고스란히 남은 통닭을 포장해 싸들고 가는 그녀의 집에는 예전처럼 통닭을 기다리던 아이들은 없겠지만 집에서 목 빼고 자신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걸음을 재촉했을 엄마처럼 겅중대며 집으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이 사랑스러운 겨울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