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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an 08. 2023

책 읽는 사람은 아름답다

주말 단상

주말 오전, 게으름을 피우기 딱 좋은 시간. 밀렸던 책을 읽으며 모처럼 여유를 즐긴다. 송년회 핑계로 집안 곳곳에 읽다 말고 던져둔 책들이 있건만 외면하고 다시 새책. 낭독교재로 쓰기 위해 주문한 신간 두권 중의 한 권을 읽는다. 이금희의 <우리 편하게 말해요>. 제목이 끌려서 궁금한 마음에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한 적이 있지만 아예 구매를 해버렸는데 마침 낭독모임 교재인데 술술 읽혀 페이지가 잘 넘어간다. 


책과 시를 사랑하는 이들로 구성된 4인 단톡방. 안도현 시인의 <겨울 강가에서> 시를 필사해 올렸더니 도서관에서 끝없이 흐르는 내 마음의 강물처럼 책을 읽고 있다는 지인의 카톡에 급 번개 제안. 30여 분 만에 3명의 만남이 성사되어 얼마 전 함께 간 적 있는 동태탕 집에서 만났다. 


반가운 만남인데 술이 빠질 수 없다며 막걸리 잔이 오가고 얼굴이 발그레해질 무렵 동태탕의 무도 푹 물러 제 맛을 낸다. 그렇게 얼큰한 시간을 보내고 살짝 올라온 취기는 달달한 바닐라 라테로 녹여낸 다음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서관 열람실로 향했다. 막걸리 한 병에 기분이 좋아진 지인은 학창 시절 가장 해보고 싶었던 소원을 이뤘다며 목소리톤이 높아진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막걸리 번개를 하는 것이 버킷리스트라는 그의 말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장착된다.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도서관 열람실. 마침 바깥 풍경이 보이는 열람실 창가 자리가 모두 비어있다.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얼른 자리를 잡는다. 겨울나무들의 모습은 앙상하지만 그들의 숨결은 이미 봄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기에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다. 오히려 차가운 바람을 잘 견뎌내고 있음이 기특하게 여겨질 뿐이다. 집에서 읽다가 들고 나온 책을 한 장씩 넘기며 읽는다. 배가 부른 탓에 졸음이 살짝 밀려오기도 하지만 가끔 맘에 드는 글에는 밑줄을 긋기도 하고 겨울풍경을 눈에 담아보기도 한다.


누군가와 도서관에서 나란히 앉아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한다는 지인은 열심히 밑줄까지 그으며 시 비평집을 읽는다. 나이가 들면 눈이 침침해지고 읽어도 금세 스쳐 지나가 책 읽기에는 악조건이 된다는데 늘 책을 가까이하는 책사랑에 감탄할 뿐이다. 그렇게 1시간 남짓 책을 읽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긴다. 함께 나갈 채비를 하며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을 보여주며 뿌듯해하는 모습이 정겹다.


늘 지혜롭게 늙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어떤 모습이 지혜로운 것인지 잘 모르지만 휴일에 나 홀로 책 서너 권을 챙겨 들고 나와 한참 동안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복잡한 것은 질색이라 늘 단순하고 쉬운 책을 골라 읽는 나의 독서취향은 변함이 없겠지만 고요한 공간에서 나를 채우는 책 읽기는 언제 떠올려도 매력적인 일이다. 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책을 읽겠노라며 걸음을 옮기는 그에게서 얼큰한 막걸리 냄새는 어느새 사라지고 따듯한 책 향기가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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