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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an 09. 2023

지금 이 순간

 평소에도 화려하거나 튀는 옷을 입지 않는 편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무채색 특히 검은색 옷을 입는 횟수가 늘어난다. 친구의 부모님을 비롯해 예기치 않은 동료나 지인의 부고 소식도 늘어나는 까닭이다. 장례식장 문화가 일상화되면서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의 애사인 경우는 덜한데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은 경우는 슬픈 마음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검은 상복을 입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가족들의 손을 잡아주고 보듬는 일밖에 할 수 없음이 아쉬울 따름이다.


너무 안타까운 죽음을 접할 때 어른들은 "이승에서 꼭 필요한 좋은 사람은 저승에서도 필요하니 빨리 데려가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름 진한 아쉬움을 담은 애잔한 표현이지만 갑작스러운 이별을 접할 때마다 정말 신이 우리 곁에 있을까 반문하게 된다.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좋은 사람들이 정말 안타깝게 떠나는 일들을 겪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1천여 명이 넘는 직원들이 함께 근무하는 곳이다 보니 일주일에도 몇 건씩 애사가 올라온다. 보통은 조부모나 부모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장 애잔한 것은 동료 당사자의 애사이다. 50대 중반의 나이. 이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다소 안정이 되고 자녀들도 좀 자라서 숨통을 좀 돌릴만한 즈음. 갑작스러운 병고로 인한 별리. 그런 날은 사무실 분위기도 종일 잿빛이다. 발인을 하는 날 그를 태운 영구차가 사무실에 들러 천천히 이동하는 광경을 가만히 바라만 봐도 그냥 눈물이 흐르곤 한다.


길게는 30여 년을 넘게 동고동락한 이들의 떠남. 환하게 웃던 미소나 정겹던 대화를 떠올리다 보면 삶의 무상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평소에는 영원히 살 듯 현재의 소중함을 잊고 살다가 가슴 아픈 일을 겪고 나서야 나를 돌아보는 것이 참 어리석게 여겨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때 후회하게 되는 일들은 돈을 더 많이 벌고 출세를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가족 또는 친구와 더 많이 사랑하고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지금 이 순간, 그리고 곁에 있는 이들과의 만남과 시간을 소중히 여길 일이다. 떠날 때 조금이라도 덜 후회할 수 있도록.


오늘도 검은색 옷을 입고 출근했다. 상주가 되어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워 눈물조차 말랐을 야윈 그녀를 마주하는 것이 엄두 나지 않지만 환한 영정사진으로 문상객들을 맞을 동료에게 마지막 이별 인사를 하고 와야 할 것이다. 늘 웃음이 많고 긍정에너지를 주던 그가 편안하게 떠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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