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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an 30. 2023

영웅이 필요 없는 사회

매일 습관처럼 뉴스를 보면서 개탄하기도 하고 흥분하곤 한다. 간혹 자신들의 이권 때문에 당파싸움 하듯 치고받는 정치인들을 볼 때면 화가 나서 tv채널을 얼른 돌릴 때도 있다. 선거 때가 되면 맘에 드는 사람이 없거나 있어도 성에 차지 않아서 투표를 할까 말까 고민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의무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내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기에 기꺼이 한 표를 행사한다. 


"조국이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무엇입니까"

그 한마디에 명치를 맞은 듯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도대체 나라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해주었다고 목숨을 버리고 부모와 자식을 버리면서 그렇게 희생하느냐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필부의 안타까운 절규. 뮤지컬 영화 <영웅>은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때부터 죽음을 맞이하던 마지막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1년을 그려냈다. 처자식을 뒤로하고 떠난 그는 거사를 이루지 못하면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지만 끝내 이국땅에서 유명을 달리했고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안중근'. 지난해 김훈 작가의 소설 '하얼빈'이 출간되자마자 구입해서 읽었고 영화 '영웅'을 두 번 관람했다.


처음 영화를 관람했을 때 기억이 너무 강렬해 며칠 동안은 영화 중간에 나왔던 음악 중 <영웅> <장부가>의 가사와 운율이 자꾸 떠올라 반복재생을 되풀이했다. 두 번째 관람할 때는 내용을 다 아니까 지루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그것 또한 기우였을 뿐. 눈으로 뒤덮인 광활한 대지를 거침없이 걸어갈 때 흘러나오는 웅장한 음악과 기필코 나라의 독립을 이뤄내겠다고 다짐하며 왼손 넷째 손가락을 단지 하는 장면은 눈을 감아도 흰 눈 위에 떨어지던 붉은 핏물이 떠오를 정도로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또한 일본 법정에서 사형 언도를 받은 아들에게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하지 말고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며 통한의 편지를 쓴 후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노래하는 장면, 그 뜻에 따라 항소하지 않고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사형집행장으로 향하던 안중근의 뒷모습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는 내 마음이 그랬던 것일까. 담담하게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망설임과 두려움이 진하게 느껴졌다.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다음 어머니 생신 때는 꼭 함께 하겠노라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뒤로하고 떠나온 고향. 그곳에서 어쩌면 평범한 아버지와 남편으로 아들로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그의 평범하지만 따스했을 삶이 떠올라 마음이 더 아릿했던 시간이었다.


예로부터 태평성대라 함은 백성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시대라 하였다. 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있거나 알 필요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물 흐르듯 치국이 잘 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수많은 필부들이 영웅이 될 수밖에 없던 시대. 그들이 청춘을 바치며 기꺼이 지켜냈던 곳이 이 나라임을 떠올린다면 우리의 나아갈 길이 조금 더 선명해질 것이다. 지금도 곳곳에서 영웅을 꿈꾸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주 평범한 소시민인 나는 영웅이 필요 없는 평온하고 행복한 나라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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