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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Feb 01. 2023

MZ세대와 라테 사이

예전에는 직장에서 휴가 결재를 올릴 때 사유를 기재하는 칸이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그 칸이 없어졌다. 사유를 쓰는 칸이 있다고 해도 대략 '가사정리', '신병치료' 등 일반적인 내용으로 채우곤 했지만 지금은 결재만 올리는 방식으로 좀 더 간편하게 바뀐 것이다. 당연히 나 또한 팀원이 휴가를 쓴다고 할 때 어디를 가는지, 무슨 용무가 있는지 본인이 먼저 말하지 않으면 구태여 묻지 않는다. 기껏해야 '안 좋은 일 있는 건 아니지'라고 묻는 정도이다.


당직근무 시에도 마찬가지다. 수백 명이 근무하다 보니 모르는 직원이 많을 수밖에 없고 어쩌다 주말 일직 근무라도 하게 되면 특히 20~30대 직원들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날은 예전 같으면 나이부터 고향, 취미까지 묻곤 했지만 지금은 굳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개인 신상에 대해 말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인 직원도 있다.


직장 내에서 이뤄지는 4대 폭력 교육시간에도 이런 내용들이 빠지지 않고 거론된다. 업무와 연관 없는 사적인 내용들은 구태여 알려고 하지도 말 것이며 질문도 하지 말라는 것. 어찌 보면 참 삭막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할 세태의 흐름이다. 간혹 MZ세대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나보다 더 윗 선배들이다. 그들도 물론 이론적으로는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머리와 생각이 따로 작동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남은 휴가를 쓴다고 했을 때 어디를 가는 것인지, 무슨 용무가 있는지 자신도 모르게 질문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 직원들은 내색은 안 하지만 불편한 기색이다. 일반적인 사유가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용무를 위한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상사 앞에서 말은 안 하지만 이해불가라는 표정을 짓는 직원들과 그 직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상사 틈새에서 내 나이는 어정쩡한 샌드위치세대 정도가 되는 듯하다. 쌍방의 입장이 다 이해가 되는 까닭이다. 상사들은 가끔 억울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라테는 모든 불편을 감수하며 다 견뎌왔는데 이제는 무조건 이해하라고 하는 것은 좀 안 맞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밥값은 물론 술값도 다 더치페이를 해야 편안하고 누군가를 위한 일방적인 지출이나 갑작스러운 회식자리도 불편해한다. 갈등요인을 만들지 않고 상대방과 스트레스 없이 지내기 위해서는 가끔은 이해불가일지라도 그들의 생각과 사고방식을 들여다보고 수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한동안 붐이 일정도로 인기를 얻었던 <90년생이 온다>에 이어 최근에 읽었던 <Z의 스마트폰>까지. 끊임없이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하고 포용할 때 비로소 동시대를 살고 있는 그와 우리 사이에 좋은 연결점이 생기고  아울러 상생하며 윈윈 할 수 있을 것이다. 내일 휴가를 써야 하는데 상사가 어려워 입이 안떨어진다는 막내 팀원에게 "눈치볼거 없어. 내 휴가잖아 "라고 힘주어 말해준다. 그리고 나 또한 무의식 중에 라떼 노릇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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