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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an 18. 2023

수필

수필은 나 자신을 숨기기 어려운 장르다. 살짝 감추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런 계산을 하면서 쓰기는 어렵다. 누에고치 풀리듯 술술 딸려 나오는 타래들을 엮어 쓰다가 이런 내용까지 써도 될까 고민하게 만드는 글인 것이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과 세상이나 사물을 낯설게 보는 마음이 있어야지만 수필은 그보다는 삶의 연륜이 묻어난다. 화려하고 찬란하기보다는 순수하고 단순하다. 소소한 일상이나 자연의 변화, 누군가와 대화 중에 문득 떠오르는 감정의 물결들이 다정하게 배어있다.


시를 써보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한동안 번득이다가 마음의 줄기들을 가지런하게 만들어주는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년에 접어들었다. 말로 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무작정 쓰는 연습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 읽으면 너무 허접하다고 폄하할 수도 있지만 내 생각과 일상이 녹아있는 글들인 까닭에 소중하게 여겨지는 단상들이다.


'수필'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피천득의 <인연>. 평소 독서에 관심이 없고 소설도 아니고 더구나 수필집은 읽어본 기억이 없는 사람도 한 번쯤은 다 들어봤을 제목일 것이다. 열일곱 살 때 처음 만났던 아사코와의 이어질 듯 이어질듯하다 결국은 평생 가슴 깊숙이 간직해야 했던 애틋한 마음을 담은 글이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책꽂이에서 발견한 피천득의 책 <수필>. 수필집 제목이 수필인 것이 궁금하기도 하고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 작은 크기의 책이 앙징맞아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 못했지만 제일 먼저 읽은 꼭지는 바로 <인연>. 그리고 수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백하고 솔직하게 담겨있는 <수필>이다. 책을 구입하면 간단한 일인 줄 알면서 3~4페이지가 되는 두 편의 글을 정성스레 필사했다. 

옮겨 적는다는 것은 눈이나 마음뿐 아니라 손으로 그 글을 기억하고 싶다는 뜻이다. 


며칠째 두어 편의 글을 쓰고도 성에 차지 않아 서랍에 담아두고 있다. 꼭 해야 할 일을 잊은 듯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작가 피천득은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방향을 갖지 않는다면 수돗물같이 무의미한 것이 된다고 말한다.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며 마음에 여유를 필요로 하는 글이라고 언급한다. 독백을 염려하면서도 하루라도 건너뛰고 나면 불안해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오늘도 나는 수필을 흉내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라는 <인연>의 한 대목을 자꾸 읽게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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