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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an 15. 2023

애썼어, 그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12시가 넘자마자 도착한 서너 개의 카톡이 반갑다.  미역국 냄새가 풍겨오고 주방에서 혼자 동분서주하는 딸의 뒤태가 보인다. 미역국에는 무엇을 넣어주면 좋은지, 먹고 싶은 메뉴가 있는지 꼼꼼히 선호도 조사를 한 딸이 차릴 아침 식단이 궁금해진다. 한껏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날이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켜 모처럼 아침 낭독을 하고 여유롭게 아침밥상을 기다린다. 일 년 중 유일하게 내 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으로 차려지는 밥상이다.


굴미역국, 신선한 배추 겉절이, 추억의 과일 샐러드, 당근, 파프리카, 오이, 오징어, 새우까지 오색빛깔을 뽐내는 양장피와 평소 취향을 고려한 편육과 홍어회, 달지 않은 당근케이크까지. 아마 이 밥상을 준비하기 위해 그녀는 새벽잠을 설쳤을 것이다. 정성스러운 밥상을 마주하고 세 식구가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모처럼 흰쌀밥을 먹는다. 음식이 다 맛있다는 말에 안도하는 딸. 평소 성격을 미루어볼 때 이 밥상을 준비하기까지 여러 차례 필요한 목록을 쓰고 지우는 과정을 반복했을 것이다. 모르쇠 하고 눈 딱 감고 지나도 따질 수는 없겠지만 고등학교 입학 즈음부터 아들과 딸이 잊지 않고 생일이면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주고 있으니 고마울 뿐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에게도 축하 메시지와 선물이 연이어 도착한다. 쑥스럽고 어색하지만 덕분에 더 행복한 날이 될 것 같다는 답장을 보낸다. 그리고 이 세상에 나를 있게 해 준, 3일 만에 어렵게 나를 낳아주신 정말 고마운 엄마한테 감사전화도 드린다. 늘 딸에게 고맙다는 엄마는 오늘도 환한 목소리로 딸의 생일을 따듯하게 축하해 주신다. 형제들 카톡방도 아침부터 수선스럽다. 사 남매가 서로 어려울 때 챙겨주고 도와주며 조화롭게 지낼 수 있음에도 감사하다.


나이의 무게가 늘어날수록 생일은 더 어색한 날이 되어간다. 축하케이크의 초를 나이에 맞게 꼽던 날은 아득해졌고 하트나 글자초를 활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sns로 받는 축하는 그나마 덜한데 대면으로 받는 인사는 쑥스럽고 민망하다. 예전에 사무실에서 공식적인 생일파티를 하기라도 하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어 졌던 기억이 난다. 어색할 일도 아닌데 왜 그럴까 싶은데 아마도 감정을 표현하고 받는 일들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짐작해 볼 뿐이다.


지인 중에 꼭 생일이 되면 잊지 않고 이른 새벽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고 동료들과 나눠먹을 빵을 사다 주시던 분이 있다. 그때는 당연하게 여기곤 했는데 오늘 문득 그분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도 어김없이 그분에게 축하 문자가 도착했다. 놀랍기도 하고 그 마음이 짠하고 고맙다.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여기저기 아픈 데가 자꾸 늘어난다는 또래 동료들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나이. 나 또한 내 반생을 굳이 구분한다면 아프기 전과 후로 기억하게 된다. 늘 골골했지만 크게 아픈 적이 없었기에 더 놀랬던 시간들. '내가 먹는 것이 바로 나'라는 명언을 경험한 기회이기도 하다. 하루를 살더라도 조금 더 건강한 모습으로 채울 수 있도록 더욱 나에게 관심을 갖기 위해 노력하게 된 것이다. 한 살 더 나이테가  늘어나는 것이 쌍수로 환영할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반갑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나이는 먹을수록 무겁지만 더 깊고 넓어질 것이라고, 더 지혜롭고 멋진 사람으로 익어가고 있다고 믿으므로. 지금까지 살아내느라 애썼어.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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