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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an 13. 2023

엄마의 졸업식

절대로 오지 말라는 당부를 뒤로하고 엄마의 졸업식에 가기로 했다. 오전엔 몸이 안 좋아 코로나 검사까지 받고 오후에는 두 시간 외출을 신청했다. 엄마를 위해 무얼 준비할까 동생들과 단톡방에서 상의 후 가벼운 마음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모처럼 날씨도 포근하고 따사로운 오후. 꽃다발과 동네 어르신들과 나눠 드실 롤케이크와 귤도 한 박스를 차에 싣고 시골로 향했다.


어릴 적부터 같은 자리에 고즈넉하게 서 있는 오래된 마을회관. 어르신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생활터는 물론 정을 주고받는 따듯한 공간으로 코로나 발생 전에는 늘 문전성시를 이뤘던 곳이다. 외관은 예전보다 많이 낡았지만 내부는 더 깨끗하고 살뜰해졌다. 복지업무를 담당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이미 도착해 회관에 와 있다며 출입문을 열어준다. 준비한 간식과 꽃다발을 들고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회관 거실 벽면에 걸린 행복대학 졸업식 축하 현수막과 앙증맞은 꽃풍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앞에는 엄마를 포함해 다섯 명의 어르신이 학사모와 졸업식 복장을 하고 그림처럼 나란히 앉아계신다. 생각지도 못한 큰딸 등장에 깜짝 놀라는 엄마. 쑥스럽고 어색해 말로는 오지 말라고 했지만 간식과 꽃을 들고 들어서니 긴장했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시청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한글 대학을 시작한 것은 벌써 몇 년 전 일이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한글을 익히지 못한 어르신들을 위한 과정으로 한글공부뿐 아니라 색칠공부와 만들기 등 다양한 과목으로 진행된다. 매일 마을회관으로 출근하는 엄마는 그 모습이 좋아 보였던 지 한글은 습득하셨지만 입학해 6년간 매주 수업에 참여했고 나이가 제일 젊어 반장도 맡으셨다. 꼼꼼하고 야무진 담당 선생님 얘기도 자주 하시곤 했다. 코로나 시기에는 비대면방식으로 이뤄졌는데 교재를 받는 날이면 다 마칠 때까지 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하실 정도로 모범생이셨다.


작년 하반기부터 '행복대학'으로 명칭을 바꾼 어르신 대학은 해가 바뀌면서 정규과정을 수료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졸업식을 시행하는 중이다. 마을회관이 졸업식장이 되고 읍면의 기관장과 마을주민들이 함께 축하해 주는 작지만 따듯한 졸업식. 이날 나도 갑작스레 축시 낭송을 부탁받아 얼굴이 발개져 이기철 시인의 시 한 편을 낭송해 드렸다. 경직된 표정으로 내내 어색해하던 엄마는 졸업장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얼굴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사 남매 모두 대학 학사모를 씌워주었지만 팔십 평생 정작 당신은 한 번도 제대로 된 졸업생이 되어보지 못했던 엄마. 늘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것을 당연한 소임으로 알고 살아온 그녀. 학사모를 쓰고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그녀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 교차하는 날. 풋풋한 향기를 듬뿍 선사하는 화사한 축하 꽃다발처럼 그녀의 남은 생 또한 곱고 아름답게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엄마, 졸업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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