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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an 12. 2023

나도 명예퇴직할 수 있을까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에 백색 후드티를 입고 식당에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이 환하다. 셔츠 모자에 달려있는 하얀 털 덕분에 오늘따라 더 따스해 보인다. 옷이 이쁘다고 하니 아들만 둔 친구가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낼 사람이 없다며 모임을 주선하면서 함께 사 입은 단체복이라는 말에 웃음이 터진다. 명예퇴직 3년 차를 맞은 그녀는 퇴직 예찬론자이다.  결론인즉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행복하고 즐겁다는 것. 퇴직하고 나면 딱 3개월이 제일 좋다고 하던데요 라는 말에 3년이 지나도 좋다고 힘주어 말한다.


자녀들은 다 출가했고 매달 꼬박꼬박 연금이 나오니 그 금액에 맞춰 쓰면 되고 신앙생활과 봉사활동만 열심히 해도 시간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긴장이나 스트레스 없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주 만나면서 이어가는 생활 덕분에 일상은 물론 얼굴표정도 항상 편안해 보인다. 물론 입보다는 지갑을 여는 횟수도 많은 덕분에 후배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반면 정년퇴직을 위해 6개월 퇴직준비교육에 들어선 선배님은 아직은 얼떨떨해 보인다. 항상 긴장하며 보낸 30여 년 세월. 아침잠이 많은 그녀는 아침 9시까지 출근하는 일이 제일 어려웠노라고 회고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오래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던 그녀에게는 경외의 박수를 보내고 싶은 맘이다. 여전히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어색하고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를 하고 싶다는 그녀. 교육시작과 함께 며느리 집에 머물고 싶다며 시골에서 거처를 옮겨 온 어머니와의 갑작스러운 동거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이라고 한다.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진 시대. 대학 졸업 후 30여 년이 넘는 기간을 한곳에서 보내는 이들. 특히 무탈하게 정년까지 마치고 퇴임식을 하는 선배들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생긴다. 사표만 안 쓰고 잘 버텨내면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싶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그 또한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한다. 업무에 대한 부담 때문에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조기퇴직을 하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건강상의 이유로 중도하차하거나 사건사고에 연루되어 자의와 관계없이 직장을 떠나기도 한다.


나 또한 7년여를 남겨둔 직장생활에서 전환기를 맞고 있다. 30여 년이 넘어가면서 이곳에서 정말 마무리까지 해야 하는지 한번 더 돌이키게 되고 언제쯤 떠나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시점이다. 중학교에서 영어교사를 하는 친구는  만날 때마다 명퇴하겠노라고 선언하곤 한다. 해가 바뀌면서 퇴직 2~3년을 남겨둔 동료들의 명퇴소식이 간간히 전해진다. 용기 있게 먼저 나가는 그들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그 속마음과 앞으로 계획들도 궁금해진다. 


퇴직 후에는 돈을 벌기보다는 그동안 많이 받고 살았으니 많이 베풀고 살아야 한다는 선배님의 말을 되새겨보는 즈음. 오늘 공교롭게도 전자문서 게시판에 2023년 명예퇴직 시행계획이 게시되었다. 올린지 얼마 안되었는데 벌써 조회수가 700여회에 이른다. 당분간 고민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겠구나 싶다. 나도 명예퇴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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