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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an 22. 2023

우리는 이미 행복하다


콜로라도 대학의 리프 반 보벤 교수는 "행복한 이들은 공연과 여행 같은 '경험'을 사기 위한 지출이 많고, 불행한 이들은 옷이나 물건 같은 '물질' 구매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라고 말한다. 물건은 혼자 쓰려고 구입하지만 경험구매는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으며 더 친사회적인 행동이다. 아마도 사람들과 행복한 경험을 하고 느낄 수 있는 일들에 투자하고 시간을 보낼 때 더 행복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 경험을 돌아봐도 물건으로 얻는 기쁨이나 만족도는 생각만큼 크거나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는다. 그 물건을 주문하고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과 내 손안에 들어왔을 때 잠깐동안 설렘 정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시큰둥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행이나 공연은 좀 체감의 깊이가 다르다. 즐기는 그 순간은 물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며 미소를 머금기도 하고 각인된 기억들을 되새김질하며 뿌듯해하는 것이다.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장석주 작가의 산문집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읽었다. 깊이 몰입해서 읽기보다 시간 날 때마다 한 꼭지씩 천천히 음미하듯 읽은 탓에 일목요연하게 그 내용들이 정리되지 않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며 최종적으로 메모한 한 문장은 <우리는 이미 행복하다>이다. 곁에 있는 파랑새를 못 알아보고 오랜 시간 동안 찾아 헤맸다는 동화 속 이야기처럼 나 또한 내 손안에 쥐고 있는 행복을 알아보지 못한 채 갈망하는 삶을 살아온 날이 많았다.


때론 이 길이 아닌 저 길을 갔다면 인생이 조금 더 나아졌을까 후회하기도 하고 나는 왜 누구보다 더 많이 갖거나 이루지 못했는지 비교하면서 의기소침하거나 작아진 날도 많다. 아이들이 크면서 학교와 직장을 견주어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주눅 든 적도 있다.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은 내가 갖지 못한 것들 때문에 크게 안달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단점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가진 장점을 특화하면서 보람을 찾고 즐기려고 애쓴다. 내 힘으로 노력해도 안 되는 일들에 연연하며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고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다. 


홈쇼핑이 일상화되면서 TV채널을 돌릴 때마다 쇼호스트들의 현란한 말솜씨에 나도 모르게 채널을 고정하고 갈등하는 시간도 늘어났다. 품목이 다양하지만 내 관심사는 의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겨울이 되면서 울이 함유된 터틀넥세트, 핸드 메이드 코트와 맵시 있는 바지. 지금 갖고 있는 옷들도 다 소화하지 못하면서 자꾸 더 사고 싶어 안달한다. 혹여 일부 사이즈나 색상이 매진이라는 말이 나오면 서둘러 휴대전화에서 쇼핑 앱을 찾는다. 그럴 때마다 여전히 나는 물욕에 눈이 어두운 전형적인 소인의 삶을 살고 있구나 싶어 실소를 머금곤 한다.


행복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 제각각일 것이다. 많이 소유하고 거느릴 때 뿌듯함과 행복을 느끼는 이도 있고 아주 작고 단순한 것에 의미를 두며 자족의 삶을 살기도 한다. 따사로운 햇살, 새콤달콤한 붉은 딸기 한알, 정갈하게 잘 마른 수건의 감촉, 좋아하는 작가의 책장을 여유롭게 넘길 때 나는 종이소리, 언제 만나도 편안한 이들과 함께 하는 대화 하며 웃는 순간. 이른 아침 직장을 향하기 위해 나선 출근길에서 올려다본 새 파란 하늘빛. 감사 일기를 쓰듯 하루의 일과들을 더듬어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숱한 순간들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사소한 일이나 순간들에 무슨 '행복'이라는 명칭을 부여할 수 있느냐고 얼굴 붉히며 따진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그 또한 자신이 선택할 몫이다.


남들은 나에게 늘 걱정이 없는 사람처럼 편안해 보인다고 말한다.  왜 그렇게 보일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듣기 싫은 말은 아니어서 아니라고 부정하지도 않는다. 걱정이 많고 어두운 그림자를 갖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기운이 느껴진다는 의미일 것이기 때문이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사람이나 사물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시각과 망각의 힘 덕분일 것이다. 특히 부정적인 일이 발생했을 때 자꾸 되씹으며 고민하기보다는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하며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고 판단되면 징징대며 연연하기보다는 바로 내려놓고 하룻밤 자고 나면 지난 기억으로 묻어버린다.


설 명절을 즈음해 지인들의 인사 문자가 계속 도착한다. 나 또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며 이내 건강하고 행복하라는 답장을 보낸다. 너무 진부한 말 같지만 그토록 자주 언급하는 이유는 건강과 행복이 우리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하면서도 꿈꾸는 목표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 그대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간절한 바람이다. 가진 것이 없다고 믿고 늘 헛하다고 느끼는 날이 여전히 많지만 잠시 멈춰 내가 서 있는 현재를 문득 되돌아보는 순간 우리는 알게 된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갖고 있고 이루었으며 행복한 사람이라는 즐거운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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