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숙 Mar 22. 2023

'시'를 생각한다

화요일 저녁마다 줌으로 함께 시를 읽고 낭독법을 배운다. 시를 읽는 법에 정답은 없지만 시인이 시를 쓸 때의 마음과 정서를 담아 읽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서러운 시를 씩씩하게 읽거나 자연스러운 톤이 아니라 신파조로 읊으면 안 된다. 물론 이론은 알지만 실전 적용은 쉽지 않다. 오래된 언어 습관 때문이다. 나름 감정을 이입하다 보면 힘이 빠지고 어미를 늘이거나 강조하다 보면 듣는 사람이 거북해지는 것이다. 물론 낭독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은 턱없이 부족한 연습량도 한몫한다. 간신히 수업만 안 빠지고 들을 뿐 다음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연습시간은 기껏해야 한 시간 미만이기 때문이다.


요즘 카카오의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이 화제다. 2000년대 인터넷 발달과 함께 대화형 메신저 형태의 다양한 챗봇이 개발되었는데 전자상거래, 은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고객지원이나 정보 습득등에 활용되고 있다. 

이미 2016년 세계바둑 최강자 이세돌과 구글의 자회사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 소프트웨어 '알파고'와의 대결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일정한 패턴이나 동선이 있는 체스나 장기와 달리 바둑은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해 기계가 넘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여겨온 탓에 관심은 더 높았다. 


최근 이목을 끄는 것은 시를 쓰는 챗봇이다. 

'봄날이 다가오니 / 길거리를 걸으면 / 꽃향기가 코끝을 스치네/ 

위 내용은 봄날을 주제로 한 시를 만들어달라는 질문에 챗봇이 내놓은 문구라고 한다. 며칠 전에도 SNS에 챗봇이 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면서 신기하기도 하고 이내 씁쓸했던 기억을 다시 소환하기에 충분한 글이다. 정작 무언가 쓰고 싶어 한참 끄적이고 나서 읽어보면 유치하고 어색해  '시'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내 글들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시인들은 시의 첫 줄은 신이 주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한 줄을 얻기 위해 꼬박 며칠 밤을 새우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기도 한다. 반면 챗봇은 질문과 동시에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시를 줄줄 풀어낸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시인들은 '인공지능이 쓰는 시는 시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한다. 시인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그래 맞아'라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급격히 떨어지는 작가 지망생의 자신감. 과연 인간의 영역과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새삼 떠올리게 된다.


한동안 글이 뜸한걸 보니 '봄을 타나 봐요'라는 지인의 말에 서둘러 변명하는 답장을 보내는 아침. 류시화 시인의 시 <옹이>를 필사하며 '시'를 생각한다.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 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중략)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 한때는 이것도 여리고 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번 상처로 /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작가의 이전글 원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