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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Mar 09. 2023

원씽!

선택과 집중

따사로운 봄 햇살이 그리운 휴일 오전. 주중에 미뤘던 일정을 소화하느라 집을 나섰는데 오랜만에 그녀에게서 카톡이 왔다. 최근에 시집을 출간했는데 직접 전달하고 싶다는 내용이다. 마침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병원에서 약처방을 받은 후 카페로 향했다. 먼저 도착한 그녀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반긴다. 10여 년 전 평생학습관에서 우연히 인연을 맺었고 오래도록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그녀. 글쓰기에 진심이었던 그녀는 대학원에 진학한 후 내리 박사과정까지 마쳤고 그 사이에 국내 유수의 문학사에서 등단도 했다. 평소 맑고 엉뚱한 그녀의 발상은 늘 창의적이고 기발하다. 물건의 앞면만 바라보는 평범이 아닌 비범함을 갖고 있다. 


집에서 키우는 송아지 무릎에서 따스한 아버지를 만나고 그냥 스쳐 지나는 노후된 마을 저수지에서 오래된 설화를 찾아 술술 풀어낸다. 포르르 날리는 벚꽃 잎 속에서 삶의 이야기를 듣고 일상의 사소한 것들에 따듯한 숨을 불어넣는다. 그녀가 머무는 곳곳에서 시가 잉태되고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하는 말랑한 글로 익어간다.


따끈한 시집을 건네는 그녀의 표정이 환하게 빛난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가 담긴 페이지를 서둘러 펼치며 그 시를 쓸 때의 마음 조각을 설명하느라 눈빛과 손길이 분주하다. 가족들의 이야기와 개인사가 듬뿍 배인 시들을 포함해 책으로 출간하는 것이 부담으로 와닿기도 했는데 더 친근함이 느껴진다며 관심 있게 읽어주는 분들이 많다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녀가 대학원 진학을 권유했을 때 망설이다 포기했다. 직장이 핑계였지만 자신이 없었다는 말이 더 맞다. 합평 때마다 지적받는 일이 너무 힘들고 시를 쓰는 것이 어렵다며 하소연하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 이제 할만하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만날 때마다 시의 깊이와 농도가 달라지고 몰입하는 마음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날도 그녀는 여전히 당분간은 시를 더 쓰고 싶고, 다른 일보다 최우선의 자리에 놓고 싶다고 말했다.


<원씽>의 작가 게리캘러는 시종일관 강조한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원씽'을 찾아 집중하고 파고들라고. 나는 직장에 다니니까, 나는 아프니까, 나는 시간이 부족하니까 하면서 끊임없이 만들어대는 핑계들. 그러는 사이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던 일들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나이를 먹는다. 하나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면서 욕심을 부리며 여러 가지 일들에 정신을 분산하고 그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결국은 경쟁에서도 뒤처지고 정작 자신이 원하는 일은 잊어버리고 산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한 가지. 꼭 이루고 싶은 그것은 무엇일까 떠올렸다. 누군가는 출세나 승진이 우선순위 일수도 있고 가슴 설레일정도로 하고 싶은 또 다른 일에 더 비중을 둔다. 물론 한 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 일에 신경을 분산할 경우 최적의 성과 또한 장담하기 어렵다. 가장 큰 불행은 불리해질 때마다 자신에게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며 꼭 이루고 싶은 그 한 가지를 미룬고 잊은채 산다는 것이다.


여전히 쓰고 싶은 마음이 더 깊어서 그 일에만 몰입하고 싶다며 말하는 그녀의 선택과 집중이 멋지고 부러운 날.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 해보라는 말을 들으며 또 같은 고민을 반복한다. 내 마음의 저울은 과연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 집중할 한 가지는 무엇일까. 그녀의 순수하고 맑은 시심이 봄빛처럼 온몸 깊이 전염되기를 바라며 보랏빛 표지에 담긴 시 한 편을 정성스레 쓰다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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